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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얀 Dec 22. 2022

나의 X언니

이제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필요해  



2021년 1월 1일 아침. 나는 양천구의 어느 주택가 골목에서 숙취로 신음하고 있는 한 여성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백배였다. 생일보다 한 해의 시작에 의미를 두는 나의 새해는 요상한 빛깔의 토사물을 쏟아내는 백배의 등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의 마흔살이 시작되었다. 








내 일상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백배 






백배를 처음 만나게 된 건, 내가 만든 '머니 앤 아트'라는 모임에서였다. 당시 백배는 연극 배우 생활을 하며 생활고로 힘들어 하다 우연히 나의 브런치를 보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게 된 스물 아홉, 예술인이었다. 처음 통화했을 때 백배는 말 끝마다 '아홉수'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올해 제가 아홉수라서 정말 안 좋았거든요." 말끝마다 그놈의 '아홉수'였다. 내가 스물 아홉일 때도 그랬었나? 생각해 보니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스물 아홉의 여자로 살아간다면 '아홉수'니 '삼재'니 하는 말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배는 정말로 정중하고 예의바른 친구였다. 이때까지는...





당시 나는 치과를 다니면서 또 여러가지로 돈을 번다고 "쌔가 빠질정도"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일단 사람을 모았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매주 '현실 감각을 가진 일반인 친구들'과 '예술인의 광기를 가진 친구들'을 모아놓고 함께 먹고 살 궁리를 했다. 허나 '돈' 이야기를 하자고 모였어도 우리의 이야기는 늘 '예술'로 귀결되었다. 매주 정해 놓은 재테크 주제는 있었지만 결국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꽁트를 찍는 걸로 마무리 되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경기도 용인에 산다던 백배는 거의 매주 참여했다. 부천까지는 왕복 4시간이 걸린다면서도 매주 기어이 찾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은 차가 끊겨서 자고 갔고, 어느 날은 아침까지 이야기가 이어져 자고 갔고, 나중에는 아예 부천으로 퇴근을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셰어하우스 <김얀집>의 멤버가 되어 있었다. 주위에선 백배를 "얀니 껌딱지"라고 했고 나는 어느덧 "백배 따까리"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함께 책을 쓰는 공저자로까지 지독하게 얽혀 버렸다. 




당시 백배는 생각보다 꽤 혹독한 스물아홉을 보냈다고 했다. 주식을 넘어 해외 선물에까지 손을 대고 돈을 잃었고, 10년동안 사겼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본인 말대로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꿈도 잃어 가는 중"이었다가 트위터에서 겁없고 이상한 얀니의 브런치를 보게 되었다. <서른여덟 살까지 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돈 공부를 하며 바뀐 삶의 과정들이 솔직하고 씩씩하게 쓰인 글>을 읽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나의 글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고백을 듣고 나니 나 역시 백배를 껌딱지처럼 붙이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배가 말하듯 나와 백배는 무척 다른 사람이다. 일단 백배는 92년생 31살이고 나는 82년생으로 41살로 우리는 10살이나 차이가 난다. 나는 책 이외에는 물욕이 거의 없고 매일 된장찌개만 먹어도 괜찮은 사람이지만 백배는 배달로도 육사시미를 시켜먹고 술을 좋아한다. 나는 술을 거의 먹지 않고 술에 취한 사람도 굉장히 싫어하는데 백배는 최근까지도 필름이 끊길정도로 술에 취한 적이 있다. 나는 옷이나 악세사리 쇼핑은 거의 즐기지 않고 4계절 옷이 옷장 한통에 다 들어가는 반면 백배는 뭐든 예쁜 것이라면 이것저것 사다 모으는 취미가 있다. 




나이부터 성격, 취향과 외모까지 너무나 다르지만 한 가지 우리의 공통점이 바로 <현실 감각과 예술인의 광기>를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 9시엔 주식 매매에 신경을 곤두 세우다가도 밤 9시가 되면 최승자의 시를 읽는다. 평일엔 사회 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주말에는 시쓰기 수업과 연기 수업을 듣는다. <쇼 미더 머니>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함께 보며 울고 웃는다. 미술 전시회장에 줄을 섰다가도 함께 '토토가'로 가서 춤을 춘다. 싫어하는 것들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열광하는 이야기가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이야기 하며 함께 하고 있다. 




틴더에서 남자를 만날 때부터 사회 생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백배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지만, 내가 언제나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그냥 하나의 '개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전문가라 자신하지만, 내가 살아온 방법과 깨달음은 오직 나에게만 작동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은 늘 조마조마한 일이다. 무엇보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냥 내 멋 대로 살았다. 


그럼에도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닮아간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옆에 있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나는 내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감정과 기분은 내 주변에 자연히 흡수되는 것이란 걸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늙지 않는 뇌'를 유지하려면 위아래로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좋다고 한다. 백배 덕분에 종종 20-30대의 나와 만나게 된다. 매일 변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는 백배를 보면서 '아니, 도대체 그게 왜 안 될까?'하다가도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보면 확실히 백배 쪽이 여러모로 낫다. 그렇게 서른 살의 백배를 통과해 과거의 나와 만나고 현재의 나를 돌아본다. 백배 역시 지금의 나를 보며 자신의 10년 뒤를 그려볼지도 모르겠다. 백배의 10년 후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함께 쓴 이 한 권의 교환 일기가 끝난 뒤에는 백배가 스스로를 조금 더 자랑스러워할 수 있기를. 







상혁이네 작업실에 손금 보러 갔을 때





울산 여행 중 동네 목욕탕 거울 앞에서 



올 여름은 도서관을 다니며 함께 열심히 글을 썼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나왔다 




겁 없고 이상한 두 여자의 동고동락 일기 [나의 X언니]



많관부



틴더에서부터 연애, 하고 싶은 일로 먹고 사는 법, 일상 생활 정리 정돈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벗어나는 법까지.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사는 법을 담았습니다. 따뜻한 연말을 X언니와 함께 !



http://kko.to/58nAvoqHVQ

 

나의 X언니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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