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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Dec 10. 2024

변신술

노숙자가 변신술을 배우고 부자가 되었다니.

점백은 법원서기로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다. 드디어 경기도 오산에 5층짜리 건물을 샀을 때 그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의 평생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원래 3층짜리를 사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금리가 올라가면서 건물 가격이 픽픽 떨어졌다. 덕분에 그는 은행빚도 지지 않고 헐값에 나온 지은 지 3년밖에 안된 건물을 사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 푼 두 푼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저축을 했다. 그는 친구도 만나지 않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오직 돈에만 미쳐서 살았다. 원룸에 살았지만 그는 매달 월급의 90%를 모았다. 여자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의 관심은 오직 돈이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나이가 들면 농사나 지으려고 땅 몇 마지기를 사 두었는데, 글쎄 그곳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발표가 난 것이다. 그가 산 평당 30만 원 남짓한 땅은 10배가 올랐다. 


여기저기서 땅을 팔라고 연락이 왔지만 그는 확고부동했다. 결국 괜찮은 금액에 매각에 성공했다. 그리고 잔금이 들어오자마자 건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월세가 잘 나오는 부동산이면서 절대 공실이 생기지 않을 곳으로 정했다. 지하철에서 멀지 않으면서 최소 왕복 2차선 도로에 접해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을 골랐다.  


결국 그는 경기도 오산 쪽 지하철역 신안산선이 예정되어 있는 인근에 5층짜리 작은 건물을 샀다. 은행 대출도 끼지 않고 샀다. 지하에는 태권도 도장이 들어와 있고, 1층에는 편의점, 2층에는 식당, 3층에서는 미용실과 4층에는 피부관리실 그리고 5층에는 필라테스가 들어와 있었다.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도 들어와 있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임대료만 해도 매달 5백만 원 가까이 들어왔다. 


‘하하하, 드디어 성공했어. 이제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 수가 있겠어.’


이제 그의 취미는 자신의 건물 근처를 오고 가면서 차도 한잔 마시고 건물 인근에 건물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을 없애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이를테면 인근 공장노동자들이나 젊은 청년들이 1층 편의점 앞에서 담배라도 피우면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는 척하면서 먼지를 일으켜서 바로 옆 건물 쪽이나 보도블록 밑으로 쫓아 보내는 방법이다. 여름에는 청소부들이 입는 형광조끼를 입고 오십 센티도 더 되는 긴 쇠집게를 들고 담배꽁초를 보이는 데로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곤 했다. 겨울에는 군밤장수들이 쓰는 귀달이 털모자를 쓰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를 든 채, 붉은 고무바닥이 코팅된 면장갑을 끼고 편의점 앞과 보도블록 위를 괜스레 쓸고 다녔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르네.’ 


옷도 허름하게 입고 있어서 이 건물 세입자들을 빼고는 다들 건물 청소부로 오해하고 있다. 그는 이런 주변 사람들의 오해조차 뿌듯하게 즐기고 있었다. 건물 뒤편에는 야외 미니 주차장이 있고, 아직 주인이 상업용지를 나 놓고 개발도 하지 않고 방치한 옆의 땅 쪽을 살짝 넘어 주차관리 박스용으로 반토막짜리 컨테이너까지 갖다 놓았다. 미니사무실용으로 미닫이 창문도 달려 있고, 문도 달아놓은 컨테이너였다. 거기에 책상도 갖다 놓고 전기난로도 놓고 뜨끈하게 겨울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입자들에게 관리비와 별도로 주차티켓 형태로 주차관리비를 받으니, 자신의 난방비는 충분히 커버가 되고 남았다. 전기료는 하루 8시간 풀로 틀어도 20만 원이 안 나오는 제품으로 선택했다.


세입자 가게당 1대의 주차를 무료로 해 주고 나머지는 돈을 받는데, 가게라는 것이 손님이 와야 운영이 되므로 당연히 빌딩의 주차비는 상당히 모였다. 특히, 옆 건물자리는 몇 년째 공터로 방치되고 있어서 이쪽에 손님들의 주차를 시키고 그 돈은 자신이 받으니 아주 이런 꿀 보직이 따로 없었다. 


‘참 운도 좋아 나는.’  


건물관리를 위해서 관리소장을 알아보니 매달 300만 원을 달라고 하자, 관리소장을 자청하고 나선 것도, 무슨 특별히 할 일도 없는 건물의 돈을 들이냐는 생각에서 자신이 나선 것이다. 내친김에 관련 자격증도 땄다. 잠깐만 관리하려고 한 것이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말이 주차관리지, 들어가는 사람들의 방문목적을 묻고 각 호실에 나눠준 주차티켓에 도장을 받아서 오면 1시간까지는 무료로 해 주고 넘는 시간은 돈을 받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필라테스나 피부관리처럼 1시간이 넘는 경우에는 주차티켓당 한 시간을 쳐서 총 두 장을 내면 된다. 각 호실에서 관리비를 따로 받고 있고, 청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인근 용역업체에 의뢰해서 월 100만원 정도에 청소를 맡겼다.

 

오전 10시가 넘어야 바빠지는데 아직 오전 9시였다. 주차관리 컨테이너 안은 따스했고, 그는 졸음이 쏟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시도 때도 없이 졸리기 일쑤다. 그런 그에게 한 백발의 노인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왔다. 창문을 열고 점백이 말했다. 


“차 키를 주고 가세요. 어디 오셨나요?” 그가 물었다. 

“저기 미용실에 왔는데 아직 문을 안 열었네.”


뭐여, 왜 대뜸 반말인데 싶어서 노인을 힐끔 쳐다보았다. 허연 머리에는 검은 구석이 하나도 없고, 나이가 꽤 들어서 주름살이 자글자글하지만 동시에 혈색도 좋고 피부는 쭈글쭈글한 가죽을 억지로 잘 펴서 오일을 발라놓은 듯 말끔해 보였다. 낡은 마룻바닥을 깨끗이 청소해서 니스로 코팅을 하면 저런 느낌이 나려나. 


노인이 건넨 키뭉치를 벽 쇠그물망의 듬성한 검정 철사 위에 걸면서 자세히 보니 갈색 가죽으로 덮인 키홀더 로고에 벤츠 마크가 보였다. 뭐야? 노인은 허름해 보이는데. 힐끔 밖을 보니 검은색 벤츠 세단 한 대가 깔끔한 빛반사를 받아서 고급지게 구차구역 안에 잘 서 있었다. 뭐, 운전기사일 수도 있으니까. 점백의 입술 끝이 괜한 상상에 살짝 올라갔다. 


“어이쿠, 어르신 아직 미용실 오픈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점백도 말끝을 굳이 존대하지 않으려고 길게 말 끝을 빼고 있었다. 


“그러게요, 시간을 착각했구려. 저기 난로 옆에 좀 기다려도 될까?”


컨테이너 앞에 선 노인의 손끝이 주차관리실 안쪽 소파를 향했다. 투명한 유리창 밖에서 내부는 한눈에 봐도 따스해 보였을 것이다. 점백은 평소 같으면 칼같이 거절했겠지만, 어차피 자신의 건물에 볼 일이 있어서 왔고, 또 고급진 벤츠 세단을 몰고 온 것을 봐서 허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그러세요. 여기 들어오셔서 저기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계세요. 허허허.”


일전에 부동산 사무실인가 문을 닫고 나가면서 버리고 간 3인용 소파 한 짝과 색이 약간 틀린 1인용 소파 2개가 구색 맞춰 안쪽에 잘 놓여 있었다. 문을 닫고 노인이 들어와서는 서서 두리번거렸다. 


“밖에서 볼 때는 그냥 단출한 컨테이너인데, 안에는 아주 근사하네. 따뜻해서 너무 좋구먼.”


“제가 저기 누워서 가끔 낮잠을 자거든요. 거기 편하게 앉으세요.”


점백의 시선은 이제 다시 창문가를 향했다. 창문 밖으로는 후문 주차칸에 주차하는 차량들을 한 번에 볼 수가 있었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건물의 산업용 전기로 연결해 둔 전기난로는 이글이글 열기를 내뿜어주고 있었다. 참 오전부터 나른한 날이었다. 어제 잠이 오질 않아서 참치캔을 하나 따서 소주 반 병을 마신 탓인지 나른함이 더해 왔다. 


야옹!

‘야옹?’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나서 퍼뜩 정신을 차리니, 노인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페르시아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졸고 있었다. 엉? 노인은 어디 가고, 저게 뭐야? 점백이 놀라서는 고개를 흔들면서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다시 소파를 쳐다보니 노인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에이, 그럼 그렇지. 잠깐 졸았구먼. 하여튼 술을 좀 줄이든지 해야지. 점백의 눈에 요구르트 배달용 전동 카트가 떡하니 주차 한 칸을 차지하면서 정차하는 것이 보였다. 그가 창문을 열었다. 


“저기 아줌마 거기 대면 안돼요.”


아줌마가 익숙한 듯 미소를 지으면서 얼른 요구르트 하나를 창문 안으로 손을 넣어 점백의 책상 위에 놓았다. 


“금방 다녀올게요.”


“허 참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말은 하지만 이미 점백의 손은 익숙한 듯이 빨대종이를 까서 요구르트의 은색 마개를 뚫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공짜로 먹는 요구르트의 새콤달콤한 맛이 자극하는 기쁨이 번졌다. 공짜는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하물며 공짜 요구르트의 달콤함을 누가 거부하겠는가. 빨대를 문채로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그의 고개가 노인을 향했다.

 

뭐야? 노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두루마지 휴지가 하나 놓여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그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조금 전에는 자신이 졸다가 잘못 본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물고 있는 빨대가 느껴졌다. 이건 현실이다. 꿈이 절대 아니야.


가만히 시선을 떼지 않고 있자, 눈을 깜빡이고 있는 순간 다시 노인으로 돌아왔다. 


“깜짝이야.”


“어이쿠.” 점백이 소리치는 바람에 노인도 그 소리에 놀란 듯한 소리를 냈다. 

“아니, 어르신 지금 뭐 하신 거예요? 지금 제가 본 것이 맞나요?”

“허허, 지금 변신술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그 이후로 틈만나면 이렇게 수련 중이라오.”

“그런 것이 실제로 있나요?”

“있고 마다. 실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원래는 내가 노숙자였다오. 그러다가 도사님을 한 분 만났지요. 지금은 벤츠를 타고 다니니 말 다했지.”


노인은 말을 높였다가 낮췄다가 자신이 내키는 데로 반존대를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아니 눈앞에서 보고도 못 믿으면 말아요. 말어. 허허허. 평생 속고만 살았구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울렸다. 아마도 2층 카페가 문을 연 것 같았다.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할 때면 카페 내부의 음악소리가 건물 전체로 울려 퍼지곤 했다. 변신술이라니 배워두면 두고두고 요긴할 것 같았다. 


“저도 좀 배울 수 있을까요?”


점백이 두 손을 공손한 모양으로 깍지를 껴서 무릎 위에 올렸다. 이제는 의자를 아예 노인 쪽을 돌려서 다소곳한 표정이다. 


“에이, 이게 얼마나 유용한 기술인데.... 공짜로는 안되지. 암 안되고 말고. 내가 이걸 배우느라 10년을 그 도사님의 똥 싼 바지도 빨고 했는데.”

“그럼 뭐 얼마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흠... 어디 봅시다. 정말 관심이 있는 거요?”

“배워두면 아주 재밌을 것 같습니다. 어르신.”

“그럼... 흠... 이 건물은 누구 거요?”

“.......... 실은 제 것입니다.”

“흠, 그럴 줄 알았소, 행색이 그래도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지.... 좋아요, 뭐 나 말고 한 명정도야 더 알아도 전혀 내가 돈 버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내 정말 더도 들도 말고, 딱 5천만 원만 받을게.”


“어이쿠!”

점백은 자신도 모르게 놀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5천만원이라니. 겨우 고양이나 책으로 변신하는데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지출해야 한단 말인가. 돈이 아까워서 친구도 안 사귄 그였다.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5천만 원이라는 피 같은 돈은 다른 사람들에게 5억 이상의 가치였다. 하지만, 어디서 이런 신박한 변신술을 배운단 말인가. 그는 망설였다. 변신술을 배우면 자신을 무시했던 직장의 상사를 찾아가서 문 앞에 바위에 변신해서 놀라게 해 줄 수도 있다. 어쩌면 참새나 제비로 변신해서 시원한 겨울 창공을 한번 날아볼 수도 있겠지. 그의 꿈이 그의 욕망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래도 5천만 원이란 돈은 여전히 그에게 너무 큰돈이었다. 변신술을 배운다고 돈이 벌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껏해야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는 있겠지.물론 통장에는 그 정도의 여유자금이 있었다. 매달 받는 월세 중에 극히 일부만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능력을 배워 놓으면 어디 길 가다가 강도라도 만나면 호랑이로 변한다거나 해서 놀래줄 수도 있을것이다. 세상은 위험한 곳이고 얼마나 부자들의 돈을 노리는 사깃꾼이 많은가. 그래, 생각해보니 도둑이 집에 들거나 해도 아주 유용할 것 같다. 5천만원이면 큰 돈이지만 하다못해 마술쇼를 해서 앞으로 들어간 자본은 다 회수가 될 수도 있겠지. 어디 그뿐인가 내가 배워서 프랜차이즈 식으로 이 기술을 팔아도 되겠지. 강연도 하고 말이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 노인의 연락처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니 어떤 결정은 현장에서 바로 해야 한다. 그리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바꾼다. 자신이 농사를 지으려고 산 땅도 생각해보면 하나의 선택의 산물이지 않던가. 그는 마음에 결심이 섰다. 지금은 질러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장삿꾼의 판단이 섰다.   


“사겠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좀 보여주시죠.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제가 착각을 한 것인지도 모르잖습니까. 한번 만져봐야겠군요. 그냥 허상인지 최면 같은 것일지도 모르잖습니까?”

“허허, 제법 영리한 친구구먼. 그런 제안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그래, 좋아. 그럼 자네가 한 번 제안해 보게나.”   

“인형으로 한번 변신해 보시죠. 기왕이면 곰돌이 인형이면 좋겠군요.”

노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양손을 모으고 주문을 읊조렸다. 

“아뽀강뜨로 카샴빠데라. 곰돌이 인형!”


펑! 

아까와은 달리 이번에는 살짝 소리가 나더니 연기가 살짝 났다. 그리고 연기를 손으로 흩트러뜨리고 보니 

조금 전까지 노인이 앉아 있던 소파에는 갈색 꼬불꼬불한 보아털로 뒤덮인 앙증맞은 검은 단추눈이 붙은 곰인형이 나타났다. 점백이가 그걸 들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자신의 손에 닿는 꼬슬꼬슬한 촉감이며, 점을 찍은 듯 작은 눈 그리고 큼지막하게 얼굴 가운데 수놓은 코 부분 그 아래로 미소 짓는 봉제된 곰인형은 영락없는 곰이었다. 

그는 곰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아!!”

곰이 순간 다시 노인으로 확 바뀌었다. 백발의 노인이 점백의 손에 잡혀 있던 자신의 귀를 잡아챘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건가? 왜 귀를 잡아당기나.”

“아, 죄송합니다. 너무 신기해서요. 통증을 느끼는군요.”

“그럼, 변신해도 실체는 곧 나잖아. 그러니 다 느낀다네.”

“오, 신기한데요. 정말.” 


점백이 생각을 해 보니 저런 변신술을 익혀두면 써먹을 때가 많을 것 같았다. 인생 후반기에 이게 왠 재밌는 사건일까 후후. 그는 순간 눈치를 챘다. 노인의 주문은 앞은 한결같이 같은 단어 같았다. 한편으로 혹시 저 주문만 외우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 가만있자 뭐였지? 혹시 주문이...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어르신, 그럼 혹시 책도 됩니까?”

“조심하게나.”

노인이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아뽀강뜨로 카샴빠데라. 책!”


‘펑’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났다. 연기가 시야를 가리더니 노인이 방금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책이 놓여 있었다. 점백은 방금 들은 주문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외웠다. 단기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마침 요구르트 아줌마가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줌마를 불러 세우면서 그는 나가서 컨테이너 문을 닫고 조금 전 외운 단어를 얼른 주머니 속에서 수첩을 꺼내서 적었다. 아줌마가 놀라서 그를 쳐다보자 빙긋이 웃으면서 가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다시 컨테이너 안을 향했다. 이제 주문을 외운 그는 마치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비밀레시피를 훔쳐본 사람 같은 뿌듯함이 들었다. 5천만 원이라고? 미쳤어? 내가 5천만 원이나 내라니. 


점백은 소파에 앉자마자 이미 다시 노인으로 돌아온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한번 더 확인을 하자. 옛말에 징검다리도 망치로 두드리고 건너라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점백은 노인이 읆조렸던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워보았다. 


‘아뽀강뜨로.... 뭐였지?’


수첩에 적어두었지만 맞는지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다시 한번 해 보시오. 이번에는 책상으로.”


백발의 노인은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소파에 조금 떨어진 빈 공간으로 가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다시 주문을 외웠다. 


“아뽀강뜨로 카샴빠데라. 책상!”


그러자 점백의 눈앞에 낡고 오래된 책상 하나가 떡 하니 나타났다. 

서랍도 있고 낡고 오래되기는 했지만 마호가니 원목나무로 만들어진 튼튼하고 멋진 유럽풍 스타일의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 손을 올려보니 나무에 코팅을 한 매끈한 질감이 영락없는 책상이었다. 이건 당장 중고사이트에 팔아도 몇 십만 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확실한 소득이 있었다. 


‘흐흐, 이번엔 확실히 외웠다. 뒤가 카샴빠데라였어.’


“다시 돌아와 보시오.” 


그가 책상을 향해서 말했다. 그러자, 다시 눈앞의 책상이 서서히 사라지고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돌아오는 것은 속으로만 외쳐도 되는구먼.’


에이, 미쳤냐, 내가 이딴 변신술에 5천만 원이나 주다니. 그걸 주고 나면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는 잘 알았다. 그가 막 돌아온 노인을 향해서 말했다. 

“어르신, 참 시간을 뺏어서 죄송한데요. 생각해 보니 굳이 이런 변신술을 배워서 어디에 쓴다는 생각이 들었소, 난 평생 먹고살 만큼의 돈도 풍족하게 벌어두었고, 혈혈단신이라 어디 써먹을 때도 없다오. 굳이 필요하다면 이 건물의 관리를 할 때 가끔 여기 가게 세입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일 텐데,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 무슨 유익이 내게 있단 말이오.”


“휴.... 참 욕심이 없는 분이군요.” 


노인이 빙긋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지금껏 시연을 해 준 노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뭐, 한 5백만 원 정도라면 내가 사드릴 용의가 있소이다.”


이번에는 점백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공짜로 변신술의 주문을 외우지 않았던가. 


“허허, 됐소, 건물주 양반, 그 사이 마음이 바뀌었소?”

노인은 됐다는 듯이 손을 한번 들어 보이고는 컨테이너 문을 열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점백은 변신술 주문을 공짜로 알게 된 것이 내심 미안해서 노인에게 자동차 키를 건넸다. 


“미용 끝나면 그냥 가시면 됩니다. 어르신 오늘 주차는 제가 큰 맘먹고 공짜로 해 드리는 겁니다.”라고 생색을 냈다. 


점백이 벽에 걸린 둥근 벽시계를 보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용실이 문을 열 시간인 것이다. 창문가에 붙어서 노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일단 컨테이너의 문을 잠겼다. 창문도 시건장치를 닫았다. 굳이 변신술을 테스트하는데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까 노인이 한 모습을 떠올렸다. 어떻게 했더라. 일단 두 눈을 감고 합장을 했지. 그리고 주문을 외웠어. 이렇게.


“아뽀강뜨로 카샴빠데라. 크리스마스 츄리!”


머리를 깎은 노인은 자신과 조금 전까지 흥정했던 남자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려고 컨테이너를 찾았다. 하지만 손잡이가 밖에서 잠겨있고, 창문도 잠겨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그는 차로 돌아가려다가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창문에 얼굴을 바싹 대고 햇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는 컨테이너 내부를 살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컨테이너가 잠겨있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거기에 조금 전까지 없었던 크리스마스 츄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자신이 만난 건물주는 크리스마스 츄리를 저렇게 컨테이너안에 넣을 사람 같지는 않았다. 


변신술을 한 물건은 끝의 색이 약간 변색된 특징이 있었다. 그걸 노인 노려보았다. 틀림없는 자신의 변신술을 활용한 크리스마스 츄리가 분명했다. 노인은 잠시 컨테이너 창문 안쪽을 보고 서 있었다. 그의 입술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뭔가를 고심하는 듯했다. 이윽고, 그는 자동차 시동을 걸고, 차창을 열고는 컨테이너 창문을 향해서 왼쪽을 번쩍 들었다. 


“자, 나는 갑니다. 건강하세요.”


노인의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떠나서 멀어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훌쩍 흘렀다. 


크리스마스가 거의 다가온 어느 밤, 눈이 펑펑 내리자 동네 아이들이 던진 돌같이 딱딱한 눈뭉치에 유리창이 깨졌고, 동네 불량배들이 술 마시고 귀가하다가 깨진 컨테이너 유리창을 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크리스마스 츄리를 술에 취해서 마당으로 내던졌다. 다음날 2층 카페 사장은 출근길에 크리스마스 츄리가 건물 주차장의 가운데 던져진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카페에 가지고 올라왔다. 곧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카페의 한가운데 놓고 각종 조명과 펜던트 등을 달았다. 


점백은 얼마 전까지는 얼어 죽을 뻔했고, 지금은 난로옆이라 뜨거워서 미치고 있었다. 그는 큰소리로 주문을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아뽀강뜨로 카샴빠데라. 사람!”  

“라데빠샴카 로뜨강뽀아. 사람!”


그는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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