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만큼은 럭셔리하게
외국에 사는 친구가 몇 년 만에 한국에 들렀다. 멀리서 걸어오는 그를 보자마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그리웠던 친구. 크고 작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별안간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면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떠들었다.
또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하는데 그제야 그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추억에 노닐던 감정이 순식간에 현재로 돌아왔다. 친구의 그 팬시한 모습이 절약과 궁상사이 어딘가를 맴돌고 있는 나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지게 느껴진 것이다.
취향도 비슷해 함께 쇼핑을 즐기던 친구에게 생경한 마음이 드니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소비행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옷이나 가방을 산 지 꽤 오래되었다. 이전에도 브랜드를 따져가며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을 소비하는데 돈을 아끼지도 않았다. 그렇다 보니 내 옷장에는 저렴한 매대에서 구입한 옷들과 고가 브랜드의 옷들이 섞여있다. 값비싼 옷들은 10-20년 전에 구매한 것들이 대부분이니 그 옷들을 오히려 싸게 소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구나 그릇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 눈에 좋고 내 손에 편한 것들을 고르다 보니 저렴한 것과 꽤 값이 나가는 것들이 한데 섞여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식 취향은 또 어떤가. 캐비어나 푸아그라 같은 귀하다는 음식들은 입에 맞지 않아 쳐다보지도 않고 주로 국밥을 즐겨 먹는 걸 보면 입맛이 고급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커피의 산미에 대해서는 꽤나 까다롭게 굴고 한우와 송로버섯에 환장을 하니 저렴한 입맛이라고 보기도 어렵겠다.
늘 취향껏 소비를 하면서도 다행히 그 취향이 아주 고급은 아니라 크게 낭비하지 않고 살아왔나 보다.
이제는 나의 경제력만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니, 마냥 내 취향대로 소비하기는 어려워졌다.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지출을 해야겠다 마음먹게 되었고, 안 하던 짓도 많이 하게 된다. 옷은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에 헌 옷을 버려야 하지 않는 이상 새 옷을 사지 않는다. 싼 가격에 필요 없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경계하고 꼭 필요한 것만, 되도록이면 좋은 가격에 구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은 물건하나도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게 되고 먹거리를 구입할 때는 마감세일코너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일단 구매한 것은 야무지게 소비하는 것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 지출이다.
합리적 지출을 시작하면서 생활비가 절반가까이 줄었는데 삶의 질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소비하든 그 가치를 생각하고 한껏 누리게 되니 오히려 올라갔을지도. 어제처럼 마감세일코너에서 살치살을 득템 하는 즐거움은 생각지도 못했던 덤이다.
그 가치가 귀하고 중한 것을 럭셔리의 척도라 한다면,
한껏 검박해진 나의 태도야말로 럭셔리하다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