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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Mar 21. 2024

네델란드의 안락사 이야기 1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난 2월, 93세의 네델란드 전 총리 부부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또 한 번 우리 사회에 죽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이 동시에 회복될 전망이 없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받고 있고, 둘 다 안락사를 원해야 동반 안락사가 가능하므로 실제 사례는 많지 않다고 한다. 

네델란드 전총리 부부 (네델란드 라드바우드대 누리집 갈무리)

보도에 따르면 2020년 13쌍, 2021년 16쌍, 2022년 29쌍이 동반 안락사를 선택했다. 안락사 증가추세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인 듯하다. 2003년에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은 1815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약 1.2%였는데, 2022년에는 총 8720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5.1%를 차지했다. 


 네델란드는 1980년대부터 죽음을 도운 혐의로 의사를 기소하는 것을 사실상 중단했다. 그리고, 2002년 안락사를 최초로 허용한 국가가 되었다. 이미 이에 대한 처벌이 없었던 과거의 관행을 보자면, 금지되었던 안락사를 허용했다기보다는 법적 틀과 규제를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네델란드는 견디기 힘들고 좋아질 가능성이 없는 고통을 겪고 있고, 반드시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왕립의학협회는 안락사(조력자살 포함)를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환자의 자발적 요청에 의한 적극적 삶의 종결"로 정의한다. 


네델란드 안락사법의 특징 중 하나는 환자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근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의 주관적 판단에 너무 기대고 있다고 지적을 받기도 한다. (<경향신문>, '네덜란드 '정신적 고통 안락사' 논쟁', 2019. 6.26.자 참조) 


안락사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 <죽음의 격>에 따르면, 네델란드에서는 안락사를 국가의 전통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고, 적어도 평범하게 죽는 방법 중 하나라고 여기는 분위기라고 한다. 어느 교회의 임원은 일반적인 자살과 이 새로운 유형에 해당하는 죽음을 '자기살인'과 '자기죽음'으로 구별했다. 


 20년 넘게 안락사 제도가 유지돼온 네델란드에서는 그 자격 조건이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왔고 변경되어왔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특정 나이를 넘으면 전혀 고통스럽지 않을 때조차 의사조력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2016년, 보건복지체육부 장관은 '심사숙고해서 삶을 완료했다고 의견을 낸' 노인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기준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삶을 의미 있게 이어갈 가능성이 없고, 독립성 상실과 이동 능력 저하로 고통받으며, 가까운 사람들을 잃어 고독을 느끼고, 전반적인 피로와 기력 저하와 개인적인 존엄성 상실로 부담을 느끼는 나이 든 사람'에게 도움을 제공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빈곤하거나 외로운 사람을 죽도록 설득하는 일을 허락해선 안 됩니다. 외로움과 싸우고 존엄성을 지켜내며 어르신들에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언제나 최선의 선택입니다"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장관의 입법 시도는 실패했으나, 2019년에 한 국회의원이 '삶을 완료'한 노인을 위해 고안한 법안을 다시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사람들한테 언제 삶을 완료할지 직접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질식사하는 것처럼 끔찍한 선택지밖에 없어서는 안 되죠"라고 그는 밝혔다. 궁지에 몰려 비참한 자살을 선택하지 않도록 안락사라는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다. 


 안락사를 검토하는 심의위원회에서 9년간 일한 의료윤리학자 테오 부르는 "우리는 끔찍한 '죽음'을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 안락사를 허용했는데, 이제는 끔찍한 '삶'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위 기사) 


 네덜란드의 안락사 감독위원회에서 10년 동안 일하다 항의 사직한 개신교 신학대 교수는 안락사가 암 환자가 죽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간다고 지적했다. 가장 마지막 수단이어야 할 안락사가 무엇보다 우선하는 선택지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완화치료의 질이 크게 향상됐지만, 많은 환자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죽음을 요청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어서 그는 좋은 금기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한 금기가 없으면 우리는 노인이 살해당하는 사회에 도달할 것이다. 삶은 종종 완전히 비참하고 고난에 차 있다, 그런데 모든 중대하고 심각한 고통에 대한 해결책으로 죽음을 고려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안락사 공급이 어떤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안락사가 우리 사회에 비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네델란드에서도 논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듯하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문제인데, 논란이 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무섭고 이상한 일일 것 같다. 


앞으로 네델란드 등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안락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지금 헌법소원이 제기된 우리 사회에서의 죽음 논쟁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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