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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Mar 31. 2024

네덜란드의 안락사 이야기 2

치매노인의 안락사, 타살인가 자기결정인가?

2013년, 79세의 네덜란드인이 거실에 모인 26명의 자녀와 손자들과 일일이 포옹하고 키스를 나눴다. 그리고 아내가 불러주는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의사가 건네준 컵에 든 약을 마셨다. 그리고는 ‘이제 잠이 오네’라며 앉아있던 소파에 모로 누웠다. 


그는 사망 13년 전에는 심근경색을, 4년 전에는 피부암을 이겨냈다. 그러나, 10개월 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자 안락사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의 어머니가 오랜 기간 알츠하이머를 앓았는데,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굳었다. 이를 계기로 네덜란드에서는 치매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해당되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동아일보, “내 삶의 마감, 내가 정할 수 있게”… 조력 존엄사 헌법소원 낸 이명식 씨[서영아의 100세 카페], 2024. 3.11.)  


우에노 치즈코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도 네덜란드의 치매 환자 안락사 이야기가 나온다. 2012년 치매 진단을 받은 70대 여성이 “요양원에서 지내기보다는 안락사를 택하겠다”라는 사전 지시서를 썼다.  

2016년, 그녀는 치매 증세가 악화돼 결국 시설에 맡겨졌고, 의사는 ‘환자의 뜻에 따라’ 수면제를 넣어 안락사를 유도했다. 그런데, 의도와 달리 잠에서 깨어났고, 의사는 딸과 남편에게 환자를 붙잡고 있게 한 뒤 안락사를 진행했다. 의사는 안락사의 조건인 ‘버티기 힘든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포함했고, 치매로 화를 자주 내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상황을 ‘버티기 힘든 고통’으로 간주했다. 


검찰은 안락사에 대한 환자의 생각이 바뀌었을 수 있는데도, 정확한 의사를 알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며 의사를 기소했다. 의사는 치매 초기에 ‘의식이 있을 때’ 환자가 내린 결정을 존중했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법원도 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법 위반으로 의사가 기소된 첫 사건이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치매를 포함한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해왔다. 하지만 중증 치매환자의 경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안락사를 여전히 원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므로 허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왔다. 

(경향, 중증 치매환자 안락사시킨 네덜란드 의사 ‘무죄’, 2019.9.11.) 

그녀의 딸은 “그 의사는 우리 어머니를 정신의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어요. 감사드려요.”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네덜란드 법원 “치매 환자에 안락사 여의사 최선다했다. 무죄!”, 2019.9.12.) 

 

안락사 타당성 여부를 사후 심의하는 지역 안락사 심사위원회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로 안락사를 선택한 경우는 81건이었다. 대부분 치매 초기의 자기 결정에 따른 것으로, 이는 치매에 대한 공포를 부채질해온 정치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효과가 아닌지 치즈코는 묻는다. 이어서 삶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고 있는데, 치매 고령자를 과거의 의사 결정에 따라 안락사하는 것은 타살이지 자기 결정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치즈코는 노망을 굳이 치매라 바꿔 부를 것도 없다고 말한다. 노망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이고, 노망이 나도 즐겁게 살아가는 노인은 얼마든지 있다.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 사람은 없다. 죽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만약 치즈코 자신이 노망이 난다면, 먹을 수 있는 동안은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털어놓는다. 


이어 그녀는 고집스럽게 ‘자립’을 바라기보다는 무력한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타인에게 맡기는 일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대한 고집이나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남에게 내주고 남의 손에 맡기는 힘을 그녀는 ‘자기해방’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타인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약한 존재라는 사실, 연약한 아이가 돌봄 없이 자라날 수 없듯이 늙고 죽어가는 것 역시 돌봄 없이는 불가능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우리는 인간답게 살다 인간답게 죽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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