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에 대한 인정, 그리고 안락사
1) 손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여행 잘 다녀오렴. 나도 이번 삶의 마지막 여행을 하련다”. 손녀는 할머니와의 마지막 통화를 할머니와 함께 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초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던 할머니의 음성은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에 중심이 되어주었다.
2) 암 투병 중이던 그의 아버지는 안락사 날짜를 정하고 나서 자신의 장례식 초청장을 직접 디자인했다. 역시 암 투병을 하셨던 어머니는 자신이 책 읽고 차 마시고 이웃과 담소를 나누던 거실 의자에 앉아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삶을 마쳤다. 그는 자신도 때가 되면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3년째 살고 있는 김선영 씨가 자신의 책 『물론이죠, 여기는 네덜란드입니다』에서 소개한 네덜란드의 안락사 이야기이다. 그녀는 네덜란드를 자유와 평등, 관용이 마치 햇빛처럼 또 공기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인종, 종교, 이념이 존재하지만, 차이에 따른 극단적인 갈등 상황은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비혼, 동성애, 미혼모, 낙태, 성매매 등 많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앞장서 포용했던 나라, 다른 나라에서는 반대 시위와 경찰의 삼엄한 경비가 따르는 성적 소수자들의 행사에 전 세계 여행객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는 나라,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는 성매매 종사자들을 인권 유린이나 폭력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해서 2000년부터 성매매를 합법화했다. 종사자들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고, 90%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성매매? 노조 가입? 한국 사회에선 불편한 시선을 던질 만한 것들이 네덜란드에선 자연스럽다. 공영방송에서는 전라로 성 문제를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시민들은 성에 대한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으로 인식할 뿐이다.
네덜란드는 살벌하던 종교전쟁 시기에 종교적 관용과 다원주의를 명문화해서 종교에 상관없이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본국에서 탄압받던 철학자나 종교인,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유대인, 혁신적인 기업가 등 많은 개인과 집단들이 유입되었고, 이것이 그 나라가 번영할 수 있는 기틀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동성애자들이 망명을 원하는 1순위 국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8년 세계 최초로 수도 근처에 ‘치매 마을’을 만들었다. 치매 노인들 200여 명과 그보다 많은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 등 총 400여 명이 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호그벡 마을이다. 호그벡의 철학은 ‘환자가 아닌, 사람이 중심인 곳’이다. 이 마을에서는 ‘음악 치료’라는 말 대신 ‘음악을 즐긴다’라는 말을, ‘병동’ 대신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환자복을 입은 주민은 찾아볼 수 없으며, 간병인도 흰 가운을 입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한 지자체가 이 마을을 모델로 삼은 노인요양시설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대 등으로 무산되었다. (디멘시아뉴스‘2024.01.15. 한국에 없는 마을 ② 전 세계 치매 마을의 롤 모델, 네덜란드의 호그벡’ )
아마도 이렇게 타인의 권리와 삶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안락사를 받아들이는 문화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안락사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유와 관용의 나라에서 생각의 다양성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의 윤리학 교수 테오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자율성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연대, 인내, 최선의 노력 같은 다른 소중한 가치가 거기에 가려진 느낌이다. 지금 문제는 사람들이 고통을 견뎌낼 방법을 더는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살은 자율성의 종말이다.” 그가 검토한 안락사 500건에서 10%는 ‘외로움’에 관한 언급이 포함돼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갈수록 우려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통계 수치를 보면, 우울증에서 정신분열증까지 다양한 정신 질환으로 안락사를 처방(?)받은 환자가 2012년 13명, 2013년 44명이었다. 안락사를 택한 치매 환자도 2012년 43명에서 2013년 97명으로 늘었다. 보어 교수는 “두렵다” “네덜란드의 상황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5.3.1. ‘극단으로 치닫는 안락사’)
아직 안락사가 도입되지 않은 나라에 사는 나 역시 두렵다.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 공기처럼 햇빛처럼 일상에 스며있는 네덜란드에서도 쉽지 않은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삶과 죽음의 풍경들을 만들어낼지 두렵다. 국가가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 선택을 독려한다는 내용의 영화 <플랜 75> 역시 그런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 같다.
안락사 문제가 노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초고령 사회가 되어갈수록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찬반의 이분법으로 투표하듯 접근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각자가 늙거나 아픈 이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혹 ‘저렇게 살 거면 죽는 게 나아’라는 판결을 내심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무언의 판결이 공기처럼 햇빛처럼 우리 몸속에 배어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의 언어가 ‘사회적 타살’을 정당화하는 언어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