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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소식 Jan 23. 2022

3화, 초품아 아닌 인(人)품아 이사 가고 싶다

아빠가 육아를 만났을 때 보이는 16가지 이야기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산골짜기라고 하면 딱 맞다. 집 뒤에는 동산이 있다. 안방을 나와 소가 있는 마당을 지나 철제 대문을 열면 황금색 논이 바로 보인다. 당시 나의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를 가지 않는 나이란 건 알겠다. 담벼락을 하나 두고 옆집에 딸 부잣집이 살았다. 한날 놀러 갔다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옆에 앉아서 양반다리를 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반찬으로 김치도 있고 김도보인다. 김치는 어른만 먹는 반찬으로 알고 있었던 나다. 그 당시 나는 김치를 먹지 못했다. 동갑 여자아이가 자연스럽게 김치에 숟가락을 가져가는 게 보인다. 이어서 김치와 밥을 비며 먹는다. 밥이 빨개지는 것도 보인다. 국물에 말아먹기 까지 한다. 등에 땀이 나면서 밤에 꾸는 악몽을 보는 것 같았다. 문화적 충격이다.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된다.


  밥이 안 넘어간다. 겨우 김에 밥을 싸 먹다가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입가 주변에 묻은 김치 자욱이 보인다. 미소 소녀지만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그 길로 집까지 도망쳤다. 뛰는 내내 가슴도 빠르게 뛰었다. 전설의 고향이 떠오르면서 처녀귀신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그렇게 목숨을 건졌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가 간 교류가 있을 때 좋은 문물을 받아 들 일수 있다. 이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공포지만 자주 접하다 보면 두려움이 점점 줄어든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딸이 생기고 가족이 생겼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좋은 이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해본다.


 우리 가족은 빌라에 살고 있다. 윗집도 있고 아랫집도 있다. 아랫집에서는 가끔 전집 어린이책을 준다. 아랫집에는 3~4살 많은 언니와 오빠가 살기때문다. 전집을 살 용기가 안 났던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윗집에서는 김장을 하면 김치를 준다. 그런 이웃의 모습에 아이는 또 무엇인가를 배울 것이다. 반면에 배우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들도 있다. 아래 아랫집에는 항상 담배를 피시는 두 분이 계시다. 또 다른 집에는 한건물에 살지만 마주쳐도 인사를 안 받아주시는 분도 있다. 또 한집은 명절 때 문을 열고 요리를 하시는 집도 있다. 아이는 모르겠지만 그 연기가 고스란히 우리 집으로 올라온다. 몇 번을 말해도 잘 안 들어준다. 굳이 안 좋은 연기까지 마셔가면서 그러지 말아야 할걸 배우게 하고 싶지는 않다. 


초품아는 초등학교가 옆에 있는 집이다. 그걸 보고 내가 만들었다.  '인(人)품아' 바로 <사람을 품은 아파트>라는 뜻이다. 이런 생각이 왜 났는지 친구 집에 놀러 간 이야기를 해본다. SNS에서 알게 된 이웃이 초대를 했다. 우리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 주인분의 자녀는 3명인데 자녀들의 나이도 얼추 비슷하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다 모이니 어른 5에 아이 5가 한집에 모였다. 아이들의 나이는 2세부터 8세까지 다양하다. 아이들도 첨엔 어색했지만 주인님의 손수 만드신 '엉덩이 빵'을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친해진다. 내가 먹어 본 빵 중에 가장 맛있다.  비주얼 대박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탐스런 엉덩이산만 생각하면 또 먹고 싶어 진다. 이 빵을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엉덩이 탐정이 생각난다.

 함께 지내는 동안 아이들을 대하는 여러 가지 좋은 방식도 배웠다. '안돼'라고 말하는 대신 '삐~'라고 말하는 법을 보고 배웠다. 아침식사로 꼭 밥이 아니라 과일식을 먹는 것도 배웠다.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을 통해서 다양한 사고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사 오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분들이 반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녀의 교육환경을 위해서 초품아를 가고 커피가 있으면 스벅권이라 하고 자연을 위해서 숲세권으로 가는데 이날 이후 나는 사람이 좋아서 인품아로 가고 싶었다.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내가 살던 집이 아닐 것이다. 맛있게 먹은 음식도 아닐 것이다. 멋진 여행지도 아닐 거다. 바로 사람과 같이 있던 집이다. 바로 사람과 같이 먹었던 음식이다. 바로 멋진 풍경을 보는 나 혹은 그곳에서 만난 인연이다. 결국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남는 건 사람이다~! 인품아로 이사 가고 싶다. 


 이사 갈 형편이 안된다.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오고 싶게 만들자.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 인(人)품아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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