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퀸의 셀프 연작은 왜 피 4.5l를 얼려서 만들었나?
두 눈을 감고 있는 시뻘건 인간의 두상. 이 작품은 영국의 조각가 마크 퀸의 작품 '셀프'인데요. 재밌는 사실은 이것은 마크 퀸이 직접 피 4.5L를 뽑아서 실리콘으로 제작한 자신의 얼굴모양의 틀에 넣고 얼려서 만든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시장가격이 23억을 호가할 정도로 굉장히 인기 있고 비싸지만, 평론가들로부터 논란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왜냐하면 피를 얼려서 조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좀 혐오스럽긴 하잖아요. 그럼 마크 퀸은 대체 왜 '셀프'라는 조각을 피로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그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피라는 물성이 가진 특징이 굉장히 재밌습니다. 피는 몸 안에 있을 때는 흘러내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굳어버립니다. 이 피는 내 안에서 흐를 때는 나의 일부분이지만, 내 몸 밖으로 배출되고 나면 내가 아닌 타자가 됩니다.
하지만 마크 퀸은 이 피가 굳기 전에 얼려서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죠. '아직은 나의 일부분이자, 나의 얼굴을 하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자아를 뜻하는 Self인 것이죠.
두 번째는 이 피로 만든 두상이 전시되는 방식입니다. 이 얼려져 있는 두상은 이중 아크릴 박스로 주문 제작된 냉장고 안에 항상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이 냉장고는 영하 15도를 유지하는데요. 그렇지 않으면 피가 녹아서 작품이 훼손되기 때문이죠. 실제로 영국의 사치 갤러리에 마크퀸의 셀프 연작 중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치 갤러리 직원이 깜빡하고 냉장고의 전원을 내렸다가 작품의 일부가 녹아내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 두 가지 개념을 통해 '자아'라는 것은 나에게서 나와 세상에 떨어지면 주변 환경에 의해 존재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자아는 내 안에 있을 때는 내가 인정하고 자랑할 수 있지만, 그것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는 타자에 의해 인정되지 않으면 자아로써 존재하지 못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 사회의 발전은 호혜성과 증여로부터 발전해왔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사회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발전했다는 것이죠.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안에서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도,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점을 마크 퀸의 작품이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마크 퀸의 셀프 연작 중 한 작품은 서울의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전시되어 있는데요. 저는 이것을 실제로 보고, 작품과 냉장고의 관계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봤습니다.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 안에는 작품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고장 날 것을 대비한 예비 냉장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업소용 음료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가 있죠. 그러니까 전시공간 안에는 총 4개의 냉장고가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업소용 음료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 두 가지 냉장고는 미술관 측에서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전시실 안에서는 쓸모 있는 냉장고는 작품을 보관하고 있는 냉장고 하나밖에 없는 것 같더군요. 냉장고는 작품으로 인해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작품은 냉장고로 인해 형태를 보존하는 관계인 것이죠. 사실 냉장고가 처음 생긴 이유는 음식물들을 더 신선하게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 냉장고는 마크 퀸에 의해서 작품의 형태를 보존하는 역할로 바뀝니다. 또한 마크 퀸의 피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가 아닌, 작품의 물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러니 각각의 존재들은 서로의 관계에 의해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사람들에게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내가 원하는 방식의 자아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달리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회 속에서 인정받아지는 나의 모습을 고민해볼 수 있는 것.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크 퀸은 자신의 피를 뽑아서 냉장고를 통해 얼려가며 "자아"라는 작품을 전시하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