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rt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술호근미학 Jan 26. 2023

대체 왜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조각한 걸까?


마치 우주 괴 생명체처럼 생긴 모습, 딱히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듯한 조각들. 한국 근현대사의 기념비적인 조각가 문신의 작품들입니다. 


대체 이렇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양을 왜 예술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얼마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신 작가의 <우주를 향하여>라는 전시를 갔습니다.  그곳에는 문신작가의 회화를 비롯해 수많은 조소 작품들이 있었는데요.



그 작품들은 섣불리 '이것은 이걸 표현한 것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의 모습, 우주 괴생명체 같기도 하고, 뭔가 인간의 장기인 것처럼 보였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형상들이었죠.


문신 작가의 알 수 없는 형상의 조각은, 바로 이 점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는 처음 낯선 조각을 봤을 때, 그 모습과 가장 가까운 내가 알고 있는 일상의 물건을 매칭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오 이건 꼭 우주선을 닮았네"

"나는 촛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그 조각은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 조각은 우리가 보는 것 너머의 것을 표현하고 있죠

우리는 일상에서 볼 수 없는 형상을 봄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것 이외의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는 경험을 해보고 닫아놓았던 상상의 가능성을 여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미국에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습니다. 어학연수 중에 봉사활동을 하러 초등학교에 간 적이 있었죠. 거기서 저는 미국의 초등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주변을 그렸는데, 나무의 색을 흰색으로 칠해놨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단체로 색맹인가 싶었죠. 그런데, 학교 밖의 나무를 보니, 나무의 색이 흰색이더군요. 알고 보니 학교 밖에는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 자작나무 껍질의 색이 흰색이었던 것이죠.



저는 항상 갈색 껍질의 나무들을 보고 자라왔고, 학교에서 나무의 줄기는 갈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그렇게 그려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아이들은 항상 학교 앞에 있는 자작나무를 봐왔기 때문에 나무를 흰색으로 색칠한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시각적으로 보는 것들 안에서만 세상을 인식하고 제한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한정적이니까요. 마치, 제가 미국에서 하얀 나무를 본 것처럼 말이죠. 



한 마디로 이 세상은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봐오던 형상이 아닌 다른 것을 보는 것은 내가 봐오던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보는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내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전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끔 도와줍니다.


제가 그렇게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나무를 한 가지 색으로 칠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의 나무들도 갈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 경험은, 나의 일상의 세상을 다르게 보고, 같은 문제에 대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이전과는 다르게 볼 수 있죠.


다시 문신 작가의 조각으로 돌아가보죠. 만약 문신 작가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의 작품들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의 전시장 안에서 상상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일상생활의 물건들을 잘 표현했을까 하며 그의 조각 솜씨에만 찬사를 보냈겠죠.



하지만 문신작가의 조각은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없는 형태들을 표현했고, 이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줬습니다. 전시장 안에서의 상상했던 그 경험은 우리가 일상생활로 돌아왔을 때, 사물이나 사람, 사건들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게 되죠. 


이것이 문신 작가가 일상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조각한 이유이며, 그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근거일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시호근살롱>제 2회 모집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