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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Nov 14. 2024

에로스와 달리기

현재의 나를 긍정하고 인정하고, 상승을 향해 발을 떼는 것


플라톤의 향연에는 에로스에 대한 탄생 이야기가 있다. 에로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생일축제 당일 날, 빈곤의 여신이 술에 취한 풍요의 남신을 덮쳐서 잉태되었다. 미를 추구하지만, 풍요와 빈곤 사이에 있기에 에로스는 항상 상승하기를 원한다. 플라톤은 이 에로스가 모든 인간에게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현재의 나의 모습보다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원한다. 인간은 누구도, 현재보다 더 나빠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늙어야지, 어제보다 가난해야지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이전에 먹었던 음식과 비교한다. ‘진짜 거기 고기 엄청 맛있었는데’, 또는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고기 중에 최고다’ 하는 식으로 말한다. 만약 그 이후에 또 다른 고깃집을 가면 우리는 마지막에 먹었던 그 고깃집 진짜 맛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어제보다 건강해지고 싶고, 어제보다 돈이 많아지고 싶고, 어제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어제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나는 에로스가 있는 존재다. 이러한 에로스는 한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관계적으로, 지적으로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는 행위, 그것이 내가 정의한 사랑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에로스를 어떻게 충족시켜 나가고 있을까? 나의 행위는 바로 긍정이다. 나는 니체를 좋아한다. 니체의 철학에서 이 세상은 힘의 의지들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 의지들의 힘들이 충돌할 때, 세상에는 고통과 문제가 생긴다. 이 고통과 문제를 당했을 때, 니체는 3가지의 방식으로 문제와 고통에 반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낙타다. 낙타는 고삐에 끌려다닌다. 이 세상의 법칙과 규율에 끌려다닌다. 두 번째는 사자다. 사자는 자신의 강함을 보이기 위해 문제와 고통에 대항하고 싸운다. 하지만 문제는 인생 그 자체가 싸우는 삶이다. 이 삶은 지친다. 마지막은 아기다. 아기는 자신이 걷지 못할 때, 걷지 못하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걷고 있는 어른을 본다. 아기는 자신이 걷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시도한다. 넘어진다. 울고 슬퍼한다. 자신은 아직 걸을 수 없음을 다시 인식한다. 그럼에도 걸어본다. 그리고 마침내 걸었을 때 아기들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니체는 이러한 아기의 삶을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모습 ‘위버멘쉬’라 부른다.


나는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규율이 정해놓은 대로, 내 부모님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게끔 놔두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또한 그러한 문제들이 생기거나 고통이 다가왔을 때, 그것과 싸우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 나의 모습을 긍정하고 인정한다. 내가 더 성장하고자 하는 모습, 즉 내가 아직 내가 원하는 완벽하지 않는 모습임을 긍정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지길 원한다. 그 과정 가운데서 어려운 일들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렇기에 애쓰지 않는다. 긍정하고 과정을 즐긴다. 그러한 과정은 달리기를 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있다.



지난 일요일 나는 21km를 달렸다. 사실 달리는 행위는 참 지겨운 행동의 반복이다. 네 걸음에 한 번씩 숨을 내쉰다. 그리고 발을 구른다. 손을 흔든다. 그것의 반복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온다. 그럼에도 그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행동을 지속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나고 나면 엄청난 상승들이 나타난다.


첫 번째로 내가 달려온 거리가 늘어나 있다. 어느 순간 나는 21km를 달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풍경들을 발견한다. 새로운 공기를 마시게 되고, 달리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몸의 변화도 일어난다. 나는 3개월 동안 6kg가 넘는 살이 빠졌고, 나의 달리기 비거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5km도 달리기 어려웠던 내가 올해에만 3번의 하프 마라톤과 1번의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고, 이번주 일요일에는 풀코스 마라톤을 한 번 더 뛰게 된다.



내 인생에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달리기를 하는 나의 모습과 같다.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에 나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상태다. 42.195km는 아직 저 먼 곳에 있다. 너무나도 멀어 보이기에 과연 저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어차피 시간을 들여야 하고, 몸이 힘들어야 저기에 닿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발을 뗀다. 내 발소리를 듣는다. 나의 호흡을 느낀다. 나의 몸의 리듬을 캐치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더 목표점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낀다. 도착 거리가 줄어들수록 행복감이 더해진다. 그렇게 나는 내 에로스를 충족시킨다.


내 존재에 대한 긍정과 인정, 그리고 그것을 마치 달리기를 하듯이 위버멘쉬의 방식으로 이뤄가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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