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 텔게마이어, 9. 공공장소에 비치된 동화책
번갈아 나오는 행동
009. 공공장소에 비치된 동화책
지난번의 9번 책은 '공공장소에 비치된 동화책'이었다. 예전부터 병원이나 기차역을 가면 여러 동화책이 비치되어 있어서 어른이 된 이후에도 흘끔흘끔 들춰보곤 했다. 어린 세대가 어떤 이야기들을 품으며 자라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쾌감과 다양성을 반영한 등장인물들이 보다 장애물 없는 세상 안에서 꺄르르 웃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쁨. 동화를 읽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점점 더 세상이 삭막해지고 책은 너덜너덜해지거나 아예 비치되지 않는 곳도 많아졌다. 미국으로 넘어와서는 공공장소에 있는 동화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가 힘들었다. 도서관이라면 몰라도. 동화라는 카테고리를 잃고 싶지는 않아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라서 한국어로 된 동화책을 찾긴 힘들었고, 영어로 된 동화를 읽는 건 왠지 재미없어 보였다. 그때 보인 건 '스페인어 서적' 섹션이었다. 미국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스페인어를 하는 인구가 많다.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과 남미, 그리고 유럽의 스페인어를 1언어로 사용하는 인구들이 모여들면서 생긴 현상 같다. 여기서 만난 제일 친한 친구 중에도 스페인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도 스페인어 지원 창구가 있다. 병원에는 통역사가 있듯, 도서관에도 섹션이 있구나. 그중에서도 제일 흥미가 생기는 책을 골라 들었다. 모든 낱장을 구글 번역기 사진기로 찍어서 읽었지만 그래도 읽은 거다.
이 책은 레이나 텔게마이어라는 그래픽 노블 작가의 <자매들>이라는 책이다. 동화라기보단 두터운 그래픽 노블에 가깝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니까 그러려니 넘어갔으면 한다. 책은 자매가 가지고 싶어서 부모님을 조르던 언니가 실제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차례로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 존재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끼는 걸로 시작된다. 형편이 아주 여유롭지 않던 이 가족들은 친척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엄마 아버지의 사이를 보다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떼어 놓은 후 로드 트립을 떠난다.여정은 쉽지만은 않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미니버스에서 각자 다른 관심사를 가지게 된 어린이들은 조금씩 충돌하기도 하고,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상태로 여정을 계속해 나간다. 이들은 부모님의 사이가 소원해진 것과 먹고 싶은 것을 모두먹기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의 삶과 일상을 통해서 말이다. 포기할 줄도 알고 투정 부릴 줄도 아는 이 아이들에게는 두 가지의 행동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버거킹을 먹는 것은 당장 포기할 줄 알지만 에어컨이 없는 건 너무 싫은걸.
우리가 그간 봐왔던 동화 속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위기의 상황에 두려움에 떨더라도 이를 곧잘 해나가는 성장형이었다면, 이 자매들은 성장해야 마땅함을 알면서도 아이로서의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음을 외치는 존재들에 가까웠다. 이렇게 다정하고, 현실적이고 서글픈 얘기라니. 약간 슬픈 감상이 들었지만 결국 서로를 향해 씨익 웃을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 예쁘게도 보인다. 아직 우리는 성장 중이잖아.
[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
책의 리스트는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