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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EON Feb 25. 2024

[100권의 의미] 003.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나를 알아줘, 아니? 알지 마



나를 알아줘, 아니? 알지 마

003. 세계 문학 고전


베스트셀러들만 골라서 읽다 보면,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욕망하고 있는지가 보이게 된다. 몇 년 전부터 피로할 정도로 자주 보이는 암호화폐와 금융경제 서적. 자기 관리를 하라고 말하는 책과 힘들면 조금 내려놔도 된다고 말하는 책이 공존하는 사회. 그래서 그 목록을 가만히 읽고 있다 보면 혼란이 가중된다. 그래서 어떻게 살라는 말이야? 베스트셀러라는 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뜻이지 정답이라는 것은 아닌데도 존재하지도 않는 정답을 찾아서 책장을 서성이곤 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 100권을 읽을 때에는 계속해서 남들이 읽고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서점에 들어갔을 때, 내가 읽었던 책이 나란히 쭉 있는 것을 보면 괜히 정복감같은 것도 샘솟기도 했고. 그런데, 100권을 채우고 나서 리스트를 다시 돌아보니까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취향에 맞지 않는 책도 있었고, 아직  읽고 싶어서 메모해뒀던 책들은 트럭처럼 쌓여 있었다. 남들이 좋아하는 그런 것들을 뒤쫓아 가는 것이 내게는 별로 의미 없지 않았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오고. 그래서 이번에는 세계문학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세계 문학 고전.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고상해 보이고 좋은지. 전집을 쭉 훑다 보면 이 책을 다 읽으면 문화 교양 그런 것들을 내가 휘둘러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실격>은 그 전집 안에서도 왠지 자주 언급되는 책이다. 정말로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는 사람과 불쾌하고 축축한 책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책. 무성한 소문들을 듣고 몇 문장 정도를 접해 보면서 대략적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 톤이 있었다. 어떤 인간의 자기 고백.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만 이렇게까지 예상하던 맛이 날줄은 몰랐다. 작가의 삶과 많은 갈래를 함께 하고 있는 주인공이 불안하고 조바심 가득한 내면의 사유를 읊고 있는 책이다. 



주인공은 오바 요조. 자기 존재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책의 초반부는 그가 마치 무작위의 장소에서 만난 무연고의 사람을 묘사하듯 자기 존재를 조금씩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구성이다. 이런, 모난 사람이 있다. 그 모난 사람은 약하고 부족하기에 타인처럼 살아갈 수 없다. 정상 궤도 안에서 한 요소로 기능하기 위해서 자기 최면과 연기를 함께 곁들여서 이 삶을 유지 보수하는 사람이다. 측은함으로 이를 바라보기보단 화자는 함께 그 사람을 혐오해 주길 바라는 투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의 뇌 속을 들여다보는듯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필터 없는 세상. 그 틈에서 내가 보이면 어떡하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요조는 상실하고 과오를 저지르며 후회 막심한 나날을 이어간다. 그가 겪는 사건들은 궤가 조금 큰 편이라, 요조와 읽고 있는 자신을 동일시하기는 쉽지 않다. 요조는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책을 덮고 아, 좀 더 잘 살아야 겠다. 라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요조의 삐그덕거리는 머리속의 문장들은 조금 날카롭게 읽는 사람을 글어내기도 한다. 정말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외면해왔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자신도 세상의 요소 일부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만드는 담담한 어조와 함께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상기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난 부분들을 죽으라고 외면하곤 한다. 외면하다 보면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찬 날갯짓에 가깝다. 저 자신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이 "체"의 시대. 잘난체, 괜찮은 체, 열심히 하는 체.  표준 국어 대사전에서는 체를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이라고 정의한다. 요조가 이 이야기를 말하면서 가장 오래 유지하는 체는 모른다는 태도인 것 같다. 요조는 스스로를 모르는 체 하지만, 날 것의 생각들을 계속해서 읊어놓으며 인지와 외면이 결합된 자기 인식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너무 인간적이라 꿉꿉한 습기가 마음에 맴돈다.



이런 책을 자신의 입장과 취향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소극적인 자기 인정에 어떤 허세와 잘난 체를 깃들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세계 문학의 고고함으로 그를 포장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책을 끝까지 읽는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모나게 툭 튀어나온 어두운 혹을 관용해 주지 않을까. 



+



내가 읽은 판본의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단편이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예수의 존재를 의심하고 그를 팔아버리려고 했던 유다. 그 유자의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가치 평가와 자기 최면, 후회와 울분과 치기 어린 무의미한 사유들이 가득한 단편이다. 그는 자신의 것들을 토해내는 데에 이런 재료들을 사용했구나. 느낄 수 있는 조합이다.






[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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