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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모 Oct 05. 2019

평범한 사람이 사는 방

제가 사는 공간은요

바깥에 나가야지. 


 바깥과 밖은 같은 말인가? 늦은 아침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 이미 놓친 알람을 애써 무시하고, 오늘도 괜한 생각이 시작된다. 바깥의 줄임말이 '밖'이겠거니. 어제는 왜 이 시간이 일어나려고 작정했던 걸까. 오늘 못한 다짐을 내일로 미루고, 괜히 접혀있던 이불을 한번 쭉 펴본다. 



짧은 다짐을 번복하기에 하루는 그리 큰 단위가 아니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하루를 늦게 시작하면 하루가 정말 짧단다. 그 하루 안에 채워야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일 테다. 

그저 살아져서 살고 있는 지금 그 짧은 하루마저도 버겁다.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음으로써 무(無)의 존재로, 태어나기 이전에 느꼈을지 모를 내 세상이 끝난 것이다. 

얼른 오늘 하루가 지났으면, 내일이 되었으면, 이 가을이 지나갔으면, 그래서 2020년이 되었으면 좋겠어. 



 새 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언제나 설렌다. 올 해도 새 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지나갈 시간조차 시계를 안 보고 있으면 훌쩍 지나버렸으면- 싶다. 무겁다. 퇴근을 30분 남긴 직장인이 힘겹게 눈으로 옮기는 분침만큼이나, 시계는 이 세상이 시간에 대해 부여한 엄청난 의미와 가치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것 같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열정적으로 할 텐데, 가만히 있는 나에게 세상은 그런 재밌는 일을 그냥 주지 않는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처럼, 곤란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에게  훌륭한 마차를 주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혀주는 그런 세상은 왜 현실이 아닐는지. 

블라인드는 보이라고 있는 걸까, 보라고 있는 걸까

 

 어제 먹은 음식이 뱃속에서 존재감을 마구 뿜어낸다. 


 지금에라도 어젯밤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나 반추해 본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혼자 식사를 했을 테지. 무언가 유익해 보여서 시청한 유튜브 영상은 다음날만 되어도 그저께 먹은 점심 식사만큼이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럴 거면 그냥 재밌는 거나 봐야겠다 싶어 진다. 



 오전 5시에 일어나기,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등 세상의 길라잡이 같은 비디오들은 미처 소화되지 못한 어제 먹은 음식만큼도 남아있지 않구나, 싶은 거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공유하려고 만든 비디오 플랫폼은 한번 더 나에게 내 그릇이 어느 정돈지 확인시켜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 도착해있는 메신저들은 나를 깨우던 엄마 목소리 마냥 반갑다. 별 내용은 없어도 살아있는 나에게 보낸 메시 지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 보여도 괜찮을 만한 프로필 사진을 누르고, 말을 건네준 그 마음에 침대에 죽어있던 몸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같은 학교 후배, 어제 새로 만난 친구, 사이가 서먹해졌다 최근 화해를 한 친구 이 셋 에게서 나를 찾는 빨간 알람이 매일 아침 나를 깨워주던 엄마 목소리를 대신한다. 



 복도식 아파트의 거실에 얹혀살고 있는 지금, 커다란 창문을 통해 내가 사는 공간이 훤히 다 보인다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 화장품 자국이 얼룩진 작은 테이블, 헹거에 엎드려 매달려 있는 옷들,, 그리고 이불과 구분되고 싶지 않아 하는 내 몸이 그렇게 있다. 



 통유리로 된  박물관 전시처럼, '평범한 사람이 사는 방'이란 제목으로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시시각각 보이는 공간. 내려가 있지만 열려있는 블라인드를 통해 세상에 보이고 싶지 않은 나는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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