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내게 다가오는 중이다. 나에게로 가깝게 올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빠르게 나에게 오고 있다. 이게 뭐지 싶다. 왜 다가오지? 내게로 올 때마다 지인은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을, 나와의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매번 톡으로 밝히고 있는데도 나는 그가 왜 나에게 오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나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인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려 한다. 진심으로 주변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의 고민에 깊숙이 귀 기울이고, 그들을 만나면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그런다. 내가 주변인들을 진정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다. 이런 나를 향해서 내 주변인들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지인으로 인해 하게 되었다. 최은미, 왜 저래? 왠 친한 척?
이심전심이라고, 내가 마음으로 다가가면 언젠가는 상대에게 통할 거라 생각하고 관계에 마음을 부었다. 그러면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상대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를 고민하면 했지, 마음을 줄지 말지는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나의 주변인들에게 내가 혹 내게 비치는 지인의 모습은 아닌지 하고 조금, 아주 조금 자신 없어졌다.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려나?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을 찾으라고, 배 고플 때도 연락하라고, 진실한 인연은 좋은 삶을 마련한다면서 톡으로 마음을 보내오는 지인. 따뜻하고 포근한 게 읽을수록 내 마음을 징하게 건드리는 톡들인데, 동시에 도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지 모르겠다.
그럼, 나는? 오늘만 해도 그렇다. 교사워크숍을 하는 날이라서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10분 일찍 도착해서는 그 선생님들이 워크숍장에 들어설 때마다 잰걸음으로 다가가서 반가이 맞았다. 두 손을 꼭 잡고, 와락 안아주고, 선생님들과 눈을 맞추고, 어서 오시라며 환대하였다. 내가 지부장님도 아니면서.
아! 나는 지부의 장은 아니어도 총무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있은 교사워크숍에서 선생님들을 맞이하고, 먼저 가시는 분들을 따라 나가서 배웅하고 한 건 할 법한 행동이었다. 총무니까, 모임에 참석한 선생님들을 잘 챙기는 게 영 안 챙기는 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럽다. 그런데 나는 총무 명함이 없었어도 오늘처럼 했을 거다. 사람을 대할 때 그러고 싶다.
내 지인이 나의 총무 명함처럼 다른 직함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면 나는 지인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내 지인이 나에게 지부장님이었다면 그간 지인이 보내온 톡들이 일반 교사인 나를 향한 지부의 장의 지대한 관심으로 읽혀서 고마울 따름이었을까. 내 지인이 본사의 사장님이었다면 지방에 있는 일개 교사인 나에게 본사에서 보내오는 특별한 사인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어구, 우리 총무님 덕분에 오늘 정말 많이
웃었어요."
"총무님이 오늘도 애 많이 쓰셨네요."
참 감사한 말씀들이다. 그런데, 총무보다는 나를 칭찬하는 말이 더 좋다.
"최은미 선생님의 활약에 실컷 웃었어요."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내가 마음을 앞세워 들이미는 손잡음, 포옹, 눈 맞춤을 내 주변인들이 그저 받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을 좋아해서 그러는 거니까, 그냥 좋아해 주길! 혹여라도 최은미, 왜 저래? 라 하지 말고.
그렇다면 나도 내 지인을 그냥 받아주자. 힘들면 언제든 부르라는데, 배 고프면 밥을 사 준다는데, 진실한 인연이 되어 보자는데 뭘 복잡하게 이리저리 뒤적거려보고 있나. 내가 전심으로 다가가서 맺어지는 관계는 진솔한 만남이고, 지인이 마음으로 다가와서 맺으려는 관계는 진솔하지 않은 만남이라는 건가. 아니면, 주는 것만 할 줄 알고 받는 거엔 무능한 건가. 줄 줄은 아는데 선뜻 받을 줄은 모르는 가여운 반쪽짜리 인생살이여, 인정의 빚도 질 줄 아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