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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도 Jul 20. 2015

[이야기]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1

쓰고 싶지만 펜을 잡기 무서운 사람의 이야기

"잘 돼가?"

오랜 만에 집에 온 여동생이 나에게 묻는다. 

"뭐.. 뭘?"

분명히 그것에 대해 물어보고 있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대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혀의 발을 건다.

"글 쓰는 거 잘 되냐고? 소설 쓸 거라며.."

"아... 그.. 그거? 그냥 그렇지 뭐."


슬쩍 자리를 뜨려는 나를 동생이 잡는다. 동생은 또래 여자 애들에 비해 강단이 있다. 어릴  때부터 한 번 한다면 하고 안 한 다면 죽어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다른 집 보다는 상당히 트인 분들이라 동생의 이러한 면에 대해 일언반구, 아니 오히려 응원을 해 주시는 쪽이었다.


동생이 중학교를 마치고 대안학교를 가겠다 주장했을 때도 부모님은 반대를 하시기 보다 동생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으셨고 긴 대화가 진행된 후 동생의 뜻을 흔쾌히 인정하셨다.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동생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에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동생이 고등학교에 갔을 때 나도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힘이 많이 드셨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은 당당했다. 나는 그런 동생의 뻔뻔함에 분노가 치밀기도 했지만 감정의 대부분은 부러움이었다. 나는 동생처럼 그렇게 딱 부러지게 결정하며 살지 못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딱히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없었다. 대학도 적당히 점수에 맞춰 부모님이 응원하는 대로 심리학과를 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저 적응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군대에 갔고 동생은 일치감시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했다. 상병을 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엄마와 함께 동생이 면회를 왔다. 동생이 면회를 온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얘가 사고 쳐서 시집이라도 간다고 폭탄선언을 하러 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안고 위병소를 향했었다. 


폭탄은 맞았지만 시집은 아니었다. 그녀는 국경 없는 의사회에 뛰어들기로 했다고 한다. 그녀는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인 것을 깨달았고 이 깨달음이 한낱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님을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어 택했다고 했다. 


나는 그 먼 곳에 가야만 증명이 되는 거냐고 반문했지만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페이스 북을 통해 알게 된 언니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고, 마침 한국에 들어오게 되어 자신을 이끌었다고 했다. 옆에 있는 엄마의 표정은 대안학교를 보내기로 결정할 때 보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온 것은 허락받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오랫동안 못 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몸 조심하라는 얘기밖에 할 수 없었다. 제대를 하고 복학했을 무렵 그녀는 국경 없는 의사회의 사람들을 통해 외국 대학을 소개받을 수 있었고 그들이 주선해 준 장학금으로 의과대학에 유학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변화는 항상 동생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좋고 싫음의 경계가 없었던 내 마음 속에 무언가 불편함이 자라기 시작한 것은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유도 알 수 없었고 계기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무언가 쓰고 싶어 졌다.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외국 영화에 나오는  작가들처럼 사과 그림이 있는 가벼운 노트북을 장만했다. 나는 이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데, 돈이라면 쥐고 있어도 불안한 것이 바로 나였는데. 그렇게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고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노트북을 사 놓고 무작정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유학길에 오르기 며칠 전 동생이 나에게 그 노트북 어디서 났냐고 물었다. 샀다고 대답하자 그런 거 필요 없다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냐는 물음으로 돌아왔다. 나는 앞으로 소설을 쓸 거라고 나중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한 턱 쏘겠다고 말하자.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꿈뻑거렸다.


"오빠 작가가 되려는 거야?"

"작가가 되면 좋기는 할 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

"무슨 작가가 될 건데? 소설? 수필? 아님 기자 같은 거?"

"아니 난 그냥 이야기를 쓰고 싶어. 사실 작가 이런 거 보다는 뭔가 생각이 막 밀려오다가 그 생각들이 가슴을 다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 때부터는 왠지 가슴이 더부룩해져. 그리고 뭔가가 쓰고 싶어 지거든. 지금은 그냥 그런 거야."


동생은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오빠는 작가로 태어났나 봐. 나도 그랬거든.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도 해소가 안되고 그러다가 그게 뭔지 막 찾으려고 이것 저것 뒤져 보다가 시간만 보냈지. 그러다 봉사단체에서 올린 글들을 보면서 아 이거다 싶었었거든."

"너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오빠가 군대에 있어서 몰랐을 거야. 그때 장난 아니었어. 엄마는 그 때 내가 누구한테 차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암튼 오빠도 그런 게 온 거 같네. 

김군. 받아들이게나. 저항하면 고통만 올 뿐일세."

"또 까분다."

"그나 저나 뭐 좀 써 놓은 거 있어? 나도 좀 보여줘"

"아니 아직 남들한테 보여줄 정도는 아니고 그냥 끄적거리는 정도? 나중에 보여줄 만하면 제일 먼저 보여줄 테니까 좀 기다려"

"꼭 첫 번째일 필요는 없어.. 여자친구가 싫어할 테니 나는 두 번째가 좋겠어"


며칠 후 동생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 것처럼 글을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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