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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도 Jul 28. 2015

[이야기]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2

뭔가 쓰고 싶지만 펜을 잡기 무서워하는 사람의 이야기

처음에는 머리 속에 글이 넘쳐 흘러 그저 그걸 받아 종이에 옮기면 되었다.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들을 끄적이고 여기에 살을 붙이고 다듬으면 그냥 글이 되었다. 아니 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한 편씩 블로그도 했다. 그 당시 SNS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기분도 불러일으켰다. 하나씩 글을 올리자 블로그에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고 평가도 뒤따랐다. 


SNS 하는 사람들끼리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칭찬 일색이었다. 개중에는 심하게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자신이 유명세를 탈 전조로 생각하게 되었다.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쓸 맛이 생겼다. 


그 와중에 직장을 얻게 되었다. 사회 초년병에게 글을 쓸 시간은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취미로 글을 쓸 때는 자투리 시간에 글을 끄적이는 것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블로거 생활을 좀 하다 보니 이 습관이 변해 버렸다. 글을 읽는 독자들을 생각하니 끄적이는 글은 도저히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구상하고 자료를 찾고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하나씩 짜내었다. 


아침에 서둘러 출근하고 하루 종일 눈칫밥을 먹으며 일을 배우다 밤 늦게 정리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가끔 글감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집에 들어와서 쓰러지면 그대로 리셋.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었다. 


정신없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펜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발아되면 짧은 시간에도 쑥쑥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커져버린 욕구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큰 시험을 앞에 두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그런 압박감을 자아냈다. 


쫓기듯 펜을 잡고 달아나듯 글을 썼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고 묵혀둔 기계처럼 삐걱 소리가 난다.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블로그에 올렸던 때 만큼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써 놓은 글은 오히려 퇴행의 증거가 되고 만다. 그래도 그렇게 글을 쓰면 이상하게도 압박감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글은 창작이 아니라 배설이었다. 


직장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약간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물리적인 시간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시간 출근하고 같은 시간 퇴근하긴 했지만 주위를 흐르는 시계가 입사 때 보다는 느려진 것 같았다. 여유는 마음이 느끼는 것이었다.


조금씩 회복기에 접어든 마음은 새로운 글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깃거리가 솟아났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소재가 되고 캐릭터가 되어 머리 속에서 춤을 추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의 이야기가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 그래 이런 이야기를 써야겠어.


이야기가 떠오르면 당연히 글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펜을 잡는 것이 두려워졌다. 펜도 나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펜을 보면 손을 뻗기 힘들었고 마음을 다잡고 손을 뻗으면 펜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것 같았다.


두려웠다. 좋은 이야깃거리가 나 때문에 쓰레기로 전락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멋진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런 구절을 쓸 시기는 지금이 아닌 것 같았다. 글을 쓸 수 없는 병이 든 것 같았다. 


이 병을 고치고자 소설 쓰기에 관한 공부도 했다. 시놉시스를 끄적여 본 것도 수 차례나 되었지만 그 마저도 끝을 보지 못했다. 캐릭터를 잡아보았다. 그러나 캐릭터는 액자 속에 갇혀 글로 튀어 나오지를 못했다. 


이러한 시도를 하던 중 유학 중인 동생이 방문했다. 동생이 나에게 물어본 것은 나의 직장 생활도, 나의 안부도 아니었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것을 궁금해했다.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모습 밖에 보여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오빠의 자존심을 이런 속사정을 비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눈치도 매우 빨랐다. 게다가 평생을 보아온 나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았다. 나의 미적거리는 성격을...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동생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튐을 느꼈나 싶더니 그 불꽃은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고 이내 녹아버린 것 같았다. 


동생은 물었다. "왜 못 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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