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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72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시를 아는가?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



황경신 님의 ‘그때가 가장 슬프다’라는 시이다.

현자가 내게 알려주는 감격스러움이라기보다, 카페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들었는데, 딱 내 상황인 것 같은 가슴 시림?

운전 중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CBS FM 93.1 오후 네시에 ‘노래의 날개 위에’ 프로그램의 아나운서가 조용히,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무심한 잔잔함?


나는 왜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걸까?


이 고민의 시작은 어디쯤이었을까?

시작은 대체로 알겠다고 하는데….


아하!

그러네! 

시작은 대체로 알겠네!

그렇다면 고민의 끝은?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끝은 아닌 것이 분명한데…

시인의 말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 ‘아! 그게 정말 끝이었구나!’를 알게 될 때는 언제일까?

혹시 벌써 그 순간이 지난 건가?

여기서 고민하나!


그 끝의 시작은 언제일까?

시작은 대체로 알겠다는데, 그 끝의 시작은 언제인 걸까?

벌써 시작된 걸까?

아니면 오늘?

혹시 내일?

아니면 시작이 시작된 그 순간, 끝도 시작된 것일까?

그래서 졸업식을 ‘commencement’라고 하는 건가?

Commence가 ‘시작하다’라는 뜻을 가지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시작은 끝이다’ ‘끝은 시작이다’ ‘둘은 같은 말이다’ 뭐 이런 건가?


‘인생 성공의 시작’은 ‘인생 성공의 끝’과 함께 출발한다는 것인가?

그러니, 성공했다고 너무 자만하거나, 좋아하지 말라는 것인가?

반대로 인생의 실패는 새로운 인생 성공과 같다는 것이어서, 너무 좌절하지 말라는 것인가?


기쁨의 시작은 기쁨의 끝, 그러니까 슬픔의 시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인가?

그러니, 기쁘다고 무작정 행복해하지 말라는 뜻인가?

반대로 슬프다고 너무 절망하거나 참담해하거나, 무기력하거나, 꺾이지 말라는 뜻인가?


사랑의 시작은 사랑의 끝이 같이 시작되었다는 말인가?

그러니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너무 황홀해하지 말라는 말인가?

반대로 사랑이 떠났다고 너무 비참해하거나, 낙담하지 말라는 말인가?


참 어렵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라니…


그나저나,

도대체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언제 결정되는 것일까?

뭔가가 시작된다는데, 성공의 시작은 언제이고,

뭔가가 끝이 난다는데, 실패의 끝은 언제일까?

성공과 실패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성공은 무엇일까?


인터넷 글을 보다가 본 사진,

맥도날드 불빛에 의지해 공부하던 다니엘 카브레라!


지독한 가난과 맞서 싸우는 결연함, 환경이 나를 무릎 꿇게 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추적한 길, 음산한 파란 포장에서 느껴진다.

 결국 성공이란 ‘내게 도전하는 것, 어려움과 맞서 싸우는 것, 탓하지 않고 묵묵히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것!’이라는 묵직함이 머리를 강타한다.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페이스북에 올린 필리핀 의대생 조이스 토레프랑카씨의 자기반성도 귀하고, 이 사진에 감동해 전세계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도 아름답다. 역시 사람은 아름답다. 도대체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니엘이 졸업할 때까지 저녁마다 매장에서 공부할 수 있게 좌석을 제공해주겠다는 기업 맥도날드도 눈물겹다. 사람만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기업도 아름답다.


결국 인생의 성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

‘아픔을 함께 느끼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것’

‘아름다움에 같이 눈물 흘려주는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한다.

그렇게 조바심 나는 밤을 마무리한다.


현재를 살지 못하는 파랑새 증후군이 이 모든 고민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고,

고민의 끝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도 알게 되는 새벽!


결국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내는 수밖에…

내일 일은 내일 고민하는 수밖에…

고민은 하는데, 걱정은 하지 않을 수밖에…

눈물 흘릴 수 있지만 슬퍼하지 않을 밖에..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아! 그때가 끝이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때가 끝이었구나!’ ‘아! 그때가 끝의 시작이었구나!’의 날은 바로 오늘.

‘아! 뭔가가 시작되었구나’ ‘아! 그때가 뭔가 시작되는 날이었구나!’의 날은 바로 오늘.


그래서 조금은 슬플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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