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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73

핸드폰을 바꿔야 하나?

핸드폰 바꿀 때가 됐다.

어느덧 2년이 된 때문이다.


2년이 되어서 바꾼다?

바꿔야 되니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고장이 나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2년이 지났으니 바꾼다?

갑자기 이상하다.


내가 주인인 걸까? 갤럭시가 주인인 걸까?

나는 노예처럼, 기계처럼, 생각 없이, 너무 당연한 듯이 핸드폰을 바꿔왔나 보다.

더 심각한 건, 2년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핸드폰을 가져야 하는데... 라며.

어느덧 기계에 종속된 삶을, 기계에 내 주도권을 내어줘 버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뭐 그리 거창하게 해석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냥 좋으니까, 카메라 성능이 갈수록 좋아지니까, 새로운 기능들이 있으니까, 배터리가 온전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바꾸는 거지, 핸드폰 하나 바꾸면서 뭘 그리 철학적 담론까지 들먹이는지...

굳이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가 준 가르침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내가 시뮬라크르(원본이 아닌 복제물)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무심코 카드를 긁는 것이 아니라, 때 되면 자연히 핸드폰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주체적으로 나의 행동을,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가? 지금의 나의 행동이 기호에 의해 소비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각심 정도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건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복제물에 나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마지막 몸부림 일터다. 


그래도 핸드폰은 바꿀 것이다. 바꾸고 나서는 앱 세팅을 다시 하고, 카톡을 업그레이드하고, 주소록이 잘 옮겨졌는지 확인할 것이다.

좋아진 카메라 성능에 환호하며, '그래! 핸드폰은 카메라빨이지!' 하리라!

'카메라 성능은 아이폰인데... 난 언제 아이폰으로 갈아타지?' 하리라!

'근데 아이폰은 공인인증서나, 뭐 그런 것들 때문에 불편하다는데..' 하리라!

'이 나이에 무슨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니고, 그냥 갤럭시!' 하리라!


아니나 다를까? 카메라도 좋고, 쓰기도 편하고, 가성비도 좋고.... 그리고 난 그렇게 엄청나게 tech-savvy 한 디지털 인간은 아니니까! 그 시간에 책 한 줄 더 읽고, 자연을 더 가까이하며, 계절의 흐름을 더 느끼는, 길고양이 못 지나치고 데려와 키우는, 불공정에 분노하고, 타인의 아픔에 기꺼이 눈물 흘리는 전인적인 인간으로의 발걸음에 신경 써야겠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하트마 간디가 호화 아파트에 살면서, 비싼 차를 사려고 아등바등했다는 얘기를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생각만 해도 잘 안 어울린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강이 보이는 강남 아파트에, 벤틀리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차라리 허름한 옷에, 물레를 돌리는 모습이 훨씬 더 간디답다.

그렇다면 간디는 위대한 삶이고, 소비하는 삶은 위대하지 않은 삶인가? 

아니다. 사람마다 사는 목적이 다르기에, 누가 위대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솔직히 비싼 옷은 재질도 좋더라.

비싼 차는 안전하고, 승차감도 좋더라.

비싼 집은 영혼을 채워주더라.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러니 자연히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밖에...


자꾸 생각이 꼬리를 문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안 좋은 것인가?

좋고, 안 좋은 것을 가르는 원칙은 무엇인가?

행복한 삶은 무엇이고, 불행한 삶은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2년이 되었다며 핸드폰 기기변경을 할래? 요금을 할인할래?라는 문자에, 장 보드리야르를 떠올리고, ‘난 주체적인 인간이야!’를 외치는 나를 보며, 대견해하기도 하고, 씁쓸해하기도 하고 있다.

차라리 이전의 삶이 훨씬 편하다.

그냥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끌리는 대로 무작정 나를 내어 던지던 때의 삶!

지금은 뭔 생각을 그리 많이 하는지…

그냥 바꾸면 되지, ‘소비의 사회’는 무엇이고, ‘시뮬라크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게 다, 1년 넘게 우울증과 공황장애 덕에 생긴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서, 우울증에 걸린 걸까?

우울증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걸까?

이것도 생각하고 있다.


생각이 많다는 건 좋은 걸까?

날 아프게 하니 안 좋은 걸까?

좋은 것인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은 것인 것 같기도 하고…..


각설하고,

핸드폰을 바꿔야 할까?


당분간 더 써보자!

나와 아픔을 함께 했던 전우였으니까!

그 긴긴밤, 외로움과 고통과 싸우고 있을 때, 내 옆에서 같이 공감하던 녀석이었으니까!

유튜브를 보여주며 잠깐이라도 나를 생각의 수렁에서 건져내어 주던 키다리 아저씨였으니까!

잔나비, 김윤아, 이소라, 손태진, 김현수, 김동률, 빌리어코스티의 음악들을 들려주며 나를 위안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던 빛이었으니까!

당분간은 함께하자!


그리고, 변명 같지만,

콜라가 갈증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목마르게 하듯이, 풍요함은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갈망하게 하니까!

 ‘주체적인 나’를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함께해야겠다.


‘주체적 인간?’ 그런 거 돈 없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그런 거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하는 얘기야!

‘진짜 아름다움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다?’ 그런 거 못 생긴 사람들이 하는 얘기야!

라는 우스갯소리가 귀에 맴돌지만,

그런 것도 ‘나’일 거라 결론 내려본다.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아프고, 방황할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일 테니까!

온전히 나를 찾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이 아픔에서 벗어날 테니까!

그때까지는 간간히 슬플 예정!


#우울증 #공황장애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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