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크림도
화장품이 여자들만 바르는 거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딱히 관심이 없었기도 했고. 늦바람이 무서운 거랬나. CC크림 BB크림 등 다양한 크림을 접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난다는 여드름이나 잡티를 크림으로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었고, 평소의 피부도 하얗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었지만, 이 크림을 바르면 얼굴이 더 하얘 보이기도 하고 사진도 잘 나오고 했다. 또 고객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한두 번 바르던 크림은 자연스럽게 매일 바르게 되었다.
사실 바를 때와 발라진 상태에서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평소에는 비누로 대충 닦기만 하던 얼굴이었는데, 크림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지우자니 비누도 아닌 클렌징폼으로 정성스럽게 구석구석을 닦아주어야 했다. 너무 불편했다. 아마 깨끗이 씻었던 날보다는 대충 씻은 날이 더 많았을 테다.
요즘 과중한 업무로 인해 수면이 줄고 스트레스가 늘면서 부쩍 피부가 상했다. 그럴수록 크림의 양은 덕지덕지 늘어갔다. 평소에도 씻기 귀찮았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받았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밥은 먹었지만. 그래도 늘 베고 자는 베개에 크림 묻은 얼굴을 묻히고 싶진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온수를 틀어 피곤했던 몸과 마음을 조금씩 풀어줬다. 양치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닦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닦을 차례였는데,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손바닥에 클렌징폼을 짠 후 대강대강 문지르고 물로 헹구고 샤워를 끝냈는데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거울을 봤는데 크림들이 깨끗하게 닦이지 않고 얼굴 곳곳에 남아있었다. 결국에는 클렌징폼을 다시 손바닥에 짠 후 아까와는 다르게 얼굴 곳곳을 문질러주었다. 박박 문지르니 결국 남아있던 크림은 지워지고 아까보다 깨끗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속에 쌓이는 것들이 많다. 대개는 좋았던 감정도 있지만, 인생이란 힘든 삶을 살아가다 보니 나쁜 기억이 마음에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마음에 쌓였던 감정들이 오래될수록 우리는 그것을 더 빨리 닦아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아침에 바른 크림이 하루도 지나지 않은 저녁에 닦으려고 해도 그만큼의 정성을 들여 닦아내야 지워진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에 쌓였던 감정들을 닦아내려면 얼마나 정성스럽게 또 오래 닦아야 할까. 그만큼 그 감정도 묵어서 잘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단기간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박준 시인이 그랬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당신의 묵었던 그 오래된 감정도 자랑이 될 수 있다. 그치만 부디 언젠가는 깨끗히 지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