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다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온 지 3주 정도 되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기로 한 날이라 숯불을 피우고 있어야 할 집사람이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쪼끄만 치즈냥이랑 놀고 있는.
우리 동네는 길고양이가 많은 편이고, 우리가 이곳에 처음 이사올 때부터 동네선배인 C가 "길고양이 보면 잘해줘."라고 말한 적도 있고, 우리가 자주 가는 바다에도 고양이 떼들이 정말 많아서 지나가는 고양이 만나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고, 이 동네에는 캣맘이라는 용어도 없을 정도로 모두가 온마음으로 고양이와 함께 하고 있는 편이지만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다행히도(?) 대문조차 없는 우리 집 마당에 기웃대는 고양이는 없었다.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아 도통 갈 일이 없는 조그만 뒤뜰에 터를 잡은 고양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냐옹 소리는 들렸을테니. 우리 집은 이 동네에서 찾기 힘든 '고양이 프리' 구역이었다.
그런데 마당까지 들어와 도망가지 않은 채 앉아 있는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좀 놀다가 보내줬겠지, 내가 도착할 때쯤엔 없겠지 하며 주차를 하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조그맣고 볼품없는, 누가봐도 다사다난한 묘생을 겪었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초라한 고양이가 벌벌 떤 채 웅크리고 있었다.
동물의 어떤 점을 좋아하지 않느냐 묻는다면, 익숙하지 않은 살성과 뼈대, 여기저기 흩날리는 털, 예측 불허의 움직임, 오묘한 눈빛, 의사소통 불가능성, 학습 대상인 점 등등이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꼽는 나로서는 고양이를 쉽사리 만질 수 없었기에 고양이가 가만히 있는 틈을 타 슬쩍슬쩍 관찰해보았다.
왼쪽 허벅지 옆에 살점이 뜯긴 흔적이 있었고 아직 빨갛게 피가 고여 있었으며, 털은 누가 함부로 잘랐을리가 없는데 제멋대로 삐죽삐죽 엉망진창이었다. 한쪽 다리가 하얀색이었고 고양이를 잘 모르는 내가 봤을 때 긴 편에 속하는 듯한 꼬리는 부러진 건지, 어딘가 조금 어색했다. 얼굴이 너무너무 작아서 새끼인 것 같았는데, 몸 자체가 아주 작은 편은 아니었다. 너무 말라서 움직일 때마다 뼈의 움직임도 드러났고 울음 소리도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귀가 잘려 있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은 있어서, 귀가 잘려 있으면 중성화 수술이 된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때 당시에는 그래서 주인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이 직접 TNR을 해준 고양이들은 귀를 자르지 않고, 오히려 국가에서 길고양이들을 TNR 해주고 방사한 경우에 귀가 잘려 있다고 한다.
녀석은 우리가 고기를 구워먹는 내내 맴돌더니 결국 내게서 한우 한 점을 받아 먹었다. 한우를 계속 먹일 순 없고, 얘한테 줄 수 있는 게 뭘까 하다가 냉장고에 있는 두부를 가져왔는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H언니에게 물어보니 고양이는 육식성이라고 했다. 어쩐지 기가 막히게 고기만 골라 먹더라... 나는 계속 뭘 줘야 할까 고민하는데, 동반자는 '짬타이거'라고 불리는 군대 고양이들 얘기를 하면서 길고양이들은 다 줘도 된다고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동안 이것저것 먹어왔을 거라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조카와 영상통화도 했다. 조카가 츄르를 챙겨 주는 동네 길고양이 얄리와 닮았다고 좋아했다. "이모~ 얄리랑 닮은 것 같은데?" 하면서.
그날 밤, 바람이 너무 거세서 박스 두개와 지난 여름 놀러온 친구가 놓고 간 담요로 대충 비바람 피할 곳만 만들어줬다. 우리 집 건물은 포치가 있는 구조여서 위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을 일은 없지만, 옆으로 들이닥치는 비를 막을 방법을 궁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다음 날 아침, 고양이는 그대로 그 안에 있었다. 부랴부랴 다이소에 가서 먹을 걸 사왔는데, 뭐가 뭔지 몰라서 조금 헤맸다. (이제는 알게 된) 건식 사료와 참치캔, 츄르를 챙겼고, 내가 고양이를 안아준 채로 놀아줄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놀아주는 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몰랐으나) 끝에 깃털이 달린 낚싯대도 샀다. 멀찍이서라도 놀아줄 수 있으니까... 밥을 어디에 줘야 하는지도 문제여서, 재활용 모아둔 곳에서 납작한 플라스틱 접시를 찾아 부어줬다.
고양이가 있는 둘째 날 밤, 동네 와인가게에서 (우리는 와인 세 병을 포장하고 가게에선 소주를 마셨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을 오가면서 비염이 오히려 심해졌던 적이 있었다. 공기가 맑은 이곳에 내 기관지가 적응할 때쯤 되면 다시 서울에 올라가서 눈물 콧물 폭발하고, 내려와서 가라앉을 때쯤 다시 서울을 가니 도시에 쭉 있었을 때보다 오히려 증상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눈도 못 뜨고 비행기를 탄 날 이비인후과에 가서 알러지 검사를 했고, "고양이와 개 키울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라는 선고를 들었다. 집먼지 알러지. 집에 있는 생활먼지만으로도 이렇게 심각한데, 동물은 어림도 없다고 했다. 수치가 100 정도만 되어도 치료 요망인데 299를 넘겨서 측정이 불가하다고도 했다.
바다에만 가면 큰 개들과 함께 수영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언젠가는 꼭 개를 키워야지 다짐했던(종류도 정해놨더랬다, 레브라도 리트리버.), 휴대폰에 내 이름을 보더콜리(제일 똑똑한테 산책 안 시켜주면 난리나고 지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개여서)라고 저장해놓은, 개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매일 개 관련 숏츠를 섭렵하는 집사람으로서는 정말 슬픈 선고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도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고 애착을 가진 적도 없다시피 하기에 응, 그렇구나, 했을 뿐. 동물을 정말 사랑하는데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잠시 궁금해했을 뿐이다.
"집 계약할 때 반려동물은 안된다고 하지 않았어?"
"응. 집안에는 들이면 안된다고 했던 것 같아."
"밖에는 뭐... 주인집도 닭을 키울 거다, 개를 키울 거다 했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근데 이 고양이 주인이 갑자기 나타나면 어떨 것 같아?(이때까진 귀 잘린 이유가 주인이 TNR 해줘서인 줄로 알았기에 집사람은 주인이 나타날 걸로 생각했다.)"
"나는 오히려 좋지.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고양이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만큼은 못해줄텐데. 안아주지도 않을 거고, 집에 들일 수도 없고... 나는 그냥 밥 주고 물 주고 비 막아주는 정도 밖에 못해줄텐데. 마르고 다쳐서 불쌍하니까... 그리고 혼자잖아."
집사람은 내가 고양이를 안보낸다고 할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그럴 리가) 보내게 되더라도 많이 슬퍼할 것 같았다고 했다.(말도 안돼) 내가 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순간 자기는 강아지를 데려올 거라고도 했다. (뭐야 결국 이거였어?)
이날 갔던 와인 가게가 예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곧 영업 종료를 한다고 해서 안주를 이것저것 먹어보며 오래 있고 싶었는데 한병만 마시고 그냥 집에 왔다. 그래도 이날은 고양이 밥이 걱정되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고양이가 삼시세끼 밥을 먹는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때였고, 고양이가 훌쩍 떠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날이었다. 잠시 우리집에 다녀간 걸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