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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닙 Apr 06. 2024

100℃

물이 끓는다



흑차를 마시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흑차는 물이 가장 높은 온도일 때 우러난다.

전기 티포트에 600ml의 정수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물이 소란하게 끓어오른다. 손댈 수 없게 온도가 오르면서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 고요한 거실에서 혼자 앉아 듣기에 꽤나 크고 위협적인 소리다. 

물은 이내 100℃가 되어 잠잠해진 채 제 온도를 유지한다. 자동 보온 기능이 있는 이 티포트는 최고조로 뜨거워진 100℃의 물을 품은 채 내 옆에 앉아 있다. 물은 끓어오르기 전이 가장 소란스럽다는 것을 조용한 거실에서 차를 우려 마시며 알게 되었다. 전에는 미처 귀 기울여본 적 없던 민감한 소동이다. 

티포트에서 첫 탕을 우리려 일정량의 물을 뽑아내면 또다시 보글거린다. 이 내성적인 친구는 물이 부족하거나 넘칠 때 곧잘 수다스러워진다.


지금의 나는 끓기 직전의 시끄러운 물일까, 끓어오른 뒤의 고요한 물과 같을까.
충분하게 채워져 있을까, 총량에 비해 모자란 양이 담겨 있을까.
답을 물을 곳이 마땅치 않아 그저 100℃의 물을 따라내어 흑차를 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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