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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게 뭘까
그게 회색 털을 뿜뿜 뿜어내는 고양이 한 마리였던 것만 같고
뒤로 걷는 기억을 남기고 간지러운 털뭉치가 떠났다
걜 떠올리면 콧잔등부터 가슴 아래 명치까지 구멍 난 세포를 따라 소름이 돋아
그만큼 서늘한 게 또 뭐 있더라 하늘에 고인 새벽 구름 냄새도 그렇지
내가 가장 아끼는 고양이가 죽었다.
'죽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니. 실제 언급해도 되는 단어인가. 그 애에 대해서 뭘 써도 괜찮은 걸까.
어제부터 체기가 심해 몸이 안 좋은데, 아프고 보니 시시각각 그 애 생각이 난다. 보통의 경우 사람은 아프면 친정엄마가 보고 싶다던지 하지 않나. 힘겹게 암투병을 하다 눈앞에서 떠난 고양이 얼굴이 생각나기도 하는 건가. 아직 이른 시기 같다. 대체 너에 대해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벌써 아무 소리나 늘어놓긴 했지만 정작 내 이야기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 애 장례식이 있던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울다가 잊고 있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반복하며 이제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회색이라고 선언했다. 왜 진작 선언하지 못했던 건지 후회스러웠다. 왜 모모가 살아있을 때 그러지 못했는지 한심하게 늦어버려서 미안했다. 선언을 마치자 멈췄던 눈물이 다시 펑펑 터져 나왔다. 뜬금없는 회색 선언을 들은 복이 냉철하게 대꾸했다. 정확히 짚어보자면 걔는 사실 회색이 아니라 쥐색이라고. 울면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모모는 러시안블루라서 회색이라고 정의내리기에 다소 신비한 색을 가진 털복숭이 고양이였다. 일리 있는 복의 말에 설득당해 앞으로 회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해도 괜찮을지 혼란스러워졌다. 또 눈물이 나서 마저 울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모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감정을 눈물로 희석하기 위해 운 것 같기도 하다. 그 애의 장례식 날 나는 회색 선언을 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으면 세 번 중에 두 번은 회색이라고 말하고 한 번만 파란색이라고 대답할 거다. 기회가 있다면 어릴 적에 좋아하던 빨간색이나 묘하게 끌리는 보라색과 초록색을 언급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왜 회색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한번 더 보고 싶은 걔의 작고 귀여운 얼굴이나 발을 떠올리고 또 울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할 거다. 살다 보면 바쁜 일상에 치여 요즘처럼 매일 그리워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 애를 떠올릴 이유 혹은 여유를 마련해 두겠다는, 내게 회색 선언은 그런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