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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Mar 20. 2022

씨-발라 먹는 인생에서 만난 아이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을 보고

2022년 2월,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이 오픈했다. 진작부터 관심 콘텐츠로 찜해두고 꽤나 오래 기다린 작품. 김혜수 배우의 열연이나 소년법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내가 <소년심판>을 기다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매매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10대 가출 소녀의 사정, 위탁보호시설을 이끄는 센터장과 아이들의 갈등, 변호할 틈도 없이 끝내 사망으로 종결된 사건 모두, 2015년에 만난 너희들을 떠올리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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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라 먹는 인생에서 만난 아이들


프리랜서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에서 나는 '좀 쎈 아이들'과 함께 일했다. 소년보호처분 6호(「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를 받은 남자아이들이었다. 청소년은 부모 동의서가 있어야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부모의 부재나 기타 사유로 동의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만연해 있다는 것. 이는 아이들이 손쉽게 돈을 버는 비행에 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아르바이트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의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삥 뜯기, 마트 털기, 중고 사기 등으로 이미 쏠쏠한 돈 맛을 봤던 아이들이, 당시 최저시급인 5,580원을 벌기 위해 우리 회사로 왔다. 레몬을 씻고, 자르고, 씨를 바르고, 설탕과 섞은 후, 병입 하고, 포장하고, 배송하고, 청소하는, 지루한 과정을 함께했다. 시설에서 회사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시간을 견디며 주 1~2회씩 꼬박꼬박. 심지어 많은 지원자 중 일부만 착출 되어 오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성실하다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녀석들은 공식 외출을 핑계 삼아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그렇게 열정적이었단다. 물론 시설도 이를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보내는 것. 외출하는 순간 아이들은 언제든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회사를 오가는 그 누구도 일탈하는 법이 없었다.


처음 친구에게 회사 합류를 제안받았을 때,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6호 처분, 그러니까 소년원 가기 직전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년범? 도대체 얼마나 거친 아이들이길래! 아마도 덩치는 산 만하고, 온몸에 용호상박을 이루는 문신을 감싸고 있으며, 어른의 조언 따위는 흥- 하고 풀어 재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한데 실제는 상상과 전혀 달랐다. 고양이 배를 커터칼로 잘라 장기를 들여다봤다는 16세 소년, 아버지 사업자등록증을 훔쳐 렌터카로 무면허 운전을 했다는 17세 소년, 본드 중독을 치료했다는 20세 청년 모두, 평범했다. 문신은 있었으나 지우는 중이었고, 어른들의 말을 곧잘 따랐다. 키는 크거나 작았고, 피부는 까맣거나 하얬으며, 인상은 부드럽거나 강했다. 정말이지, 그들은 모두 평범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았다. 레몬 씨 바르는 공정을 '씨-발 타임'이라며 말장난하던 모습도, "선생님은 아니니까 누나라고 부를게요." 하고 윙크를 날리던 능글맞음도, 무한리필 삼겹살 가게에서 하는 회식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까지도. 덕분에 최저월급 120만 원을 받으며 버틴 가장 가난했던 그 시절을, 나는 인생관을 바꾼 터닝포인트로 여기고 있다. 돈보다 가치를 위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았으니까. 더불어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도.


어느 날, 시설로부터 미리 전달받은 아르바이트생 리스트에서 한 명이 교체된 채 아이들이 출근했다. 누락된 아이는 유독 피부가 뽀얗고 왜소해 기억에 남던 이였다. 들어본고 하니 늦은 밤 몰래 시설을 탈출해 다시 잡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단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이의 행방을 찾았다. 바로 공중파 뉴스에서. 친구들을 태우고 무면허 운전을 하던 중 사고를 냈다고 했다. 탑승자 전원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했다. 개중 1명은 끝내 사망했다고 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만 정답이라 여겼었는데


나는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이다. 맥주보단 소주, 고기보단 , 성선설보단 성악설. 주로 경험에서 기인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호불호를 나눴다. 가치 판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소년법 앞에만 서면 나는 쉬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소년범은 죗값을 받는 것이 마땅하나, 갱생의 기회 역시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간 옆에서 지켜본 위탁보호시설의 노고는 실로 대단했고, 진심을 다하는 어른들이 옆에 있다면 아이들은 변한다는 보고 듣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때때로 미디어에서 다루는 강력 소년범 현황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그들도 변해요!  눈으로 봤어요!"라고 하기엔 2 남짓한  경험은 너무 미천했다.


그래서 <소년심판>을 기다렸다. 소년법에 대한 대중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과연 어떤 메시지로 시청자를 설득할 것인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궁금증을 해결할 틈도 없이 매 에피소드에 몰입한 마음은 쉴 틈 없이 일렁이기 바빴다. 조건 만남 에피소드를 볼 땐, "가출하면 몸 파는 게 제일 쉬워요." 했던 17살 소녀가 떠올랐다. 쉽게 버는 돈이 싫다며 꾸역꾸역 회사를 찾던 아이였다. 위탁보호시설 에피소드를 볼 땐, 함께 일하던 소년들이 떠올랐다. 마냥 씩씩한 줄만 알았는데 그건 밖에서 바라본 내 입장이었겠구나. 아이들과 살 비비며 살던 센터장님과 그 가족분들이 정말 대단한 거였구나. 무면허 운전 에피소드를 볼 땐, 시설을 탈출한 그 소년이 떠올랐다. 6호 처분으론 감당하기 어려웠을 게 빤한 그 사건 이후,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작업을 하며 볼 요량으로 시작한 <소년심판>이었으나 결국 밤을 꼴딱 새 모든 에피소드를 정주행 했다. 급한 성격 탓에 OTT든 유튜브든 늘 1.5배속으로 보는 편인데 <소년심판> 만큼은 1배속으로 찬찬히 곱씹었다. 가끔 대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면 자막을 켜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윽고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마지막 대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다음 날 아침. 나는, 이내, 부끄러워졌다.



만 원으로 부끄러움을 덮는 비겁함에 대하여


'사회적 기업'의 모양새는 참 이상하다. '비영리 단체'처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소셜 미션을 지니면서도, '영리 기업'처럼 비즈니스 모델이 분명해야 한다. 내가 다닌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위기 청소년의 경제적, 심리적 자립이라는 소셜 미션은 견고했으나, 이를 지속하게 할 수익성은 그렇지 않았다. 수제품의 한계임을 알았기에 공장화를 꾀했으나 자본금은 턱없이 부족했고, 최저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동료들은 결국 이별을 고했다.


그로부터 7년 후. 나는 기획자에서 웹툰 작가로 엉뚱한 전직을 했다. 그동안 틈틈이 아이들과 안부를 묻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끊긴 지 오래이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재밌는 것도 함께하고 싶었는데, 지갑 얇은 웹툰 작가 지망생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그저 먹고사는 게 급급해서, 내 앞길 헤쳐나가는 게 버거워서 아이들의 사정 따윈 관심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벌고 자리를 잡으니 되려 염치가 없어 연락을 못 했다. 최저임금도 감당이 안 돼 폐업한 회사였는데, 지금 와서 굳이, 왜.


그래서 나는 그 시설에 정기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햇수로 6년쯤 되었으려나. 무엇보다 돈의 쓰임새를 보고 듣고 느낀 곳이니 오롯이 아이들을 위해 기부금이 쓰일 것이라는 믿음이 컸다. 금액은 크지 않다. 월 1만 원. 죽을 때까지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도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을 금액을 생각해 봤는데, 그게 딱 1만 원이었다. 나와 함께한 아이들은 이미 보호가 종료되었겠지만, 어쩐지 그 시절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고 싶다는 비겁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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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너희는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소년심판> 보자마자 너네 생각부터 나더라. 다들 검정고시는 당연히 올패스했겠지? 대학은 갔어? 군대는 다녀왔고? 담배는 좀 줄였어? 스무 살 되면 소주 한 잔 같이 하자는 약속은 결국 빈말이 되었네. 있지, 난 그리 멋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그래서 나는 고작 만 원으로 그 죄책감을 덜어내고 있어. 너희들은 뭐 그딴 걸로 미안해하냐며 웃어넘기겠지만, 아, 몰라. 그냥. 내 맘이 그렇다고.


와, 대박. 다들 얼굴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이름이 가물가물하네. 세월이 야속하다. 이젠 이름도 나이도 흐릿해졌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절 너희들의 반짝임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다행히 아이클라우드가 성실하게 동기화시켜놨더라고. 교복 입고 같이 사진 찍은 거 실화냐...


오래도록, 아주 질리도록 기억하고 또 기억할게.

가장 가난했지만 덕분에 행복했던 그 나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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