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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야 NAYA Oct 15. 2019

[영화] 정당화될 수 없는 광기에 대하여

조커 (Joker, 2019)

해당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미친 세상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낼 수 없는 혹독한 세상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존재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해내는 ‘조커’의 내면과 주변은 정당화될 수 없는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선과 악의 경계, 반격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 ‘선택’에 대한 영화 [조커]의 인상적인 장면을 돌이켜 본다.     


금지된 약속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의 초반, 불량 청소년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아서(조커)’가 시무룩해 있는 모습을 본 동료 ‘랜들’은 눈을 찡긋-이며 그에게 총 한 자루를 건넨다. 놀란 ‘아서’가 “난 총을 소지하면 안 되는거 알잖아?”라고 반문해도 그저 얼버무릴 뿐이다. 고담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비극적인 여정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범법행위였다.       


나는 행복할 때 춤을 춰      



술자리에서 흥이 오른 채 들썩이는 어깨춤,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할 때 절로 움직이는 손가락은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인간임을 일깨워준다. 춤을 추는 행위는, 감정을 느끼고 또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극에 치닫는 순간마다 등장하는 [조커의 댄스파티]는 그야말로 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사람을 죽였고, 또 죽일 예정인 인간이 느끼는 행복함(또는 짜릿함 또는 성취감 또는 해방감)과 이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몸놀림.      



영화 [조커]는 이 모든 메시지를 관통하는 장면을 포스터로 담아냈다.

조커는 분명한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말이다.


감정 없이 타인을 살해하지만
[타인]이 아닌 [살해]에 감정을 느끼는,
그런 인간.     

무향(無香) 무취(無臭)의 선악       



권력은 그 자체로 선일까, 악일까?

영화 [기생충]을 본 후에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찝찝함을 유발한 질문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증권회사에 다닌다는 사회적 지위, 시장선거에 출마하여 도시를 개혁할 수 있다는 사회적 권력은, 그 자체로 선악을 가지는 문제일까. 조커 마스크를 쓴 채 거리로, 거리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은 특정한 불합리에 대항하는 것일까, 사회의 구조에 반기를 드는 것일까.      



영화 [조커]는 모든 사회적 지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 노동자와 부유층의 충돌에는 어떠한 배경설명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저 사회적 지위를 도마에 올린 채,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담아냈을 뿐이다. 어찌 되었거나, 영화의 엔딩부에는 조커를 향한 맹목적이고-악한 지지가 펼쳐진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는 무색무취의 선악(善惡)은, 어느새 악으로 물들여져 있던 것이다.     


미친 세상 속 평범한 사람들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격렬한 살인과 충돌이 벌어질 때 보다 평범한 일상이 그려지는 장면들이 더욱 섬뜩했다. 예를 들면,      


미처 잠그지 못한 문을 열고 이웃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머릿속을 뒤흔드는 모든 경우의 수를 애써 물리치고 “방에 딸 아이가 자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심경.

세상의 무관심을 호소하는 조커를 향해 (누군가는 직무유기라고 비난하지만) “세상은 당신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다”라는 내뱉는 상담원.

영화의 엔딩에서 영문도 모른 채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또 다른 상담원의 끔찍한 처지


는 모두 내가 사는 세상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들이었다.      


우리의 일상에 조커를 한 방울 떨어트린 그 순간이,
가장 끔찍하고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상영관 앞에 걸린 포스터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평범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애벌레레-‘아서’가 보였다가, 마침내 부화에 성공해 참혹한 괴물이 된-‘조커’가 겹쳐 보였다. DC의 튼튼한 서사와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로 하반기 최고의 영화로 급부상한 영화 조커.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 만든 웃음에 열광하는 오늘날의 우리를 천천히 되짚어보게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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