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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야 NAYA Aug 22. 2021

네, 제가 바로 2PM 팬입니다

14년차 2PM 팬의 이야기 (1)

사진출처.문명특급 유튜브

매일 아침, 습관처럼 유튜브에 접속해 검색창에 2PM을 입력한다. 얼마 전 방영한 ‘컴눈명 특집 문명특급’ 영상 조회수가 자고 일어나면 무섭게 높아지는 중이다.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썸네일을 클릭하고 곧바로 댓글창으로 직행한다. 


‘우리집’은 그저 배경음악일 뿐. 2PM 멤버들에 대한 크고 작은 칭찬과 자잘한 드립, 감탄과 주접이 섞인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놓치지 않고 좋아요를 누른다.              


‘이 좋은 걸 2PM 팬들은 그동안 자기들끼리만 보고 있던 거냐’ 


원망 섞인 귀여운 주접 댓글에도 ‘좋아요’를 꾹 누른다. ‘네 그래요. 제가 바로 2PM 팬입니다’ 내적 땐-스를 추며. 2PM은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3년 전에도 똑같은 2PM이었는데, 새롭게 그들을 바라봐주는 시선들이 새롭다. ‘우리집 준호’가 대체 어디가 어때서 대한민국 유튜브가 반쯤 들썩였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는 어떻게 2PM을 좋아하게 되었더라, 어쩌다가 ‘우리집 준호’보다 ‘우리집 준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더 감격하게 된 걸까. 아득하게 강산이 한 번 반쯤 변하기 전의 옛날을 떠올려본다. 2PM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는 것보다, 멤버들을 칭찬하는 한국어 댓글을 읽는 것이 더욱 즐거운, 더욱 뿌듯한, 흔한 14년차 2PM 팬의 기록을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이었던 2PM의 1집 앨범

2PM의 팬이 된 것은 억지스러운 우연이었다. 때는 2008년. 나는 꼬꼬마 초등학생이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SS501, 빅뱅... 학교 앞 문방구는 늘 아이돌 사진이 조잡하게 그려진 잡지와 카드, 뽑기로 가득했고, 길거리에서는 늘 아이돌 음악이 들리던, 바야흐로 K-POP의 부흥기였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고, 누군가를 ‘덕질’하지 않고서는 대화에 끼기 힘들었다.      


당시에 나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없었는데, 그게 그렇게 불만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은 어느덧 커서 ‘연예인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나 혼자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는 기분. 억지로 좋아하는 아이돌을 만드려고 노력해도, 일단 멤버들 얼굴 구분하는 것부터 쉽지가 않아서 번번이 포기하곤 했다. 


나름 머리를 써서 멤버들 이름도 외우기 쉽고, 얼굴도 개성 있어서 구분이 쉬운 빅뱅을 좋아하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었지만, 영단어 외우듯 연예인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니 그게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운명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주말에 거실에 누워 정처 없이 TV 채널을 돌리는데, 그 순간, 아주 잠깐 멈춘 한 채널에서, 누군가를 마주했다. 스타킹이었던가, 예능 패널로 나와 놀란 표정으로 리엑션을 하고 있는 사람. 아니, 천사. 그래. TV 속에 천사가 있었다. 


잘생긴 사람을 보면 감탄을 하지만, 천사를 보면 말을 잃게 된다는 것을, 나는 11살의 나이에 깨달았다. 이상형이라고 부르기에도 송구한, 저세상 비주얼을 지닌 오라버니를 보고 정신이 잠시 혼미해졌다가, 빠르게 결심했다. 


‘저 사람이다!’ 


천사로 착각하기에 충분한 그 시절 닉쿤의 비주얼

내가 좋아할 연예인. 내가 찾던 바로 그 존재. 운명적인 만남. 나는 곧바로 가로와 세로, 높이가 똑같았던 정사각형 모양의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초록창에 미친 듯이 단어를 나열해갔다. 방송 이름, 날짜, 머리 색상, 입은 옷 모양, 출연진, 다시 방송 이름, 날짜, 재방송 날짜, 방송 주제... 


‘내 님’을 찾아 인터넷 세상을 얼마나 헤맸을까. 한 블로그에서 TV 속 그 천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같은 방송의 다른 회차 출연분이었다. 귀여운 카라티를 입은 채 블로그 속에서 다소곳이 웃고 있는 그분의 이름이, 닉쿤이란다. 닉쿤. 이름이 닉쿤이셨군요. 역시 이름이 있는 걸 보니, 인간 세상에서 발붙이고 사는 사람이었군요. 


곧바로 초록창에 ‘닉쿤’을 검색했다. 연관검색어로 2PM이 떴다. 2PM의 닉쿤이란다. 2PM이 뭐지. 초록창에 ‘2PM’을 검색했다.   


봐도 봐도 재미있는 데뷔초 비주얼

2PM, 사진과 멤버 이름이 나란히 떴다. 


그 순간에도 2PM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스크롤을 조금 내려보니, 앨범 발매 기록이 떴다. '앨범? 앨범을 냈으면 가수라는 말인가?' 그때 머리에서 또 한 번 폭죽이 터졌다. 아이돌이구나. 옳다구나. ‘내 님’이 심지어 아이돌이었구나! 


배우도 아니고, 모델도 아니고, 솔로 가수도 아닌, 아이돌이었구나! 나도 이제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겼구나! 나도 이제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동요만 듣던 어린이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그날은 11살 아이에게 꽤 기분 좋은 날이었다. 심봉사 눈뜨는 심경으로 충격적인 미모를 가진 ‘닉쿤’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고, 친구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다소 세속적인 의식의 흐름이었지만, 그토록 바라던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겼으니. 


그리고 그날은 11살 아이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적인 날이었다. 10대의 초입에서 만난 그 아이돌이, 자신의 10대를 통째로 뒤집어 흔들고,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자신의 하루를 뒤흔드는 존재로 자리잡았으니 말이다.      




- 14년차 2PM 팬의 이야기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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