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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19. 2019

나의 세계성당기행

Intro. 성당, 사람, 문화


내 인생 첫 성당, 그리고 세례를 받은 수서동성당. 나와 나이가 같아서 더 각별하다.




제목을 뭐라고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성당 탐험기?


캐나다에서의 첫 미사를 드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딘가에는 나보다 더한 분이 존재하겠지만, 나도 한 역마살 하는지라 참 다양한 곳의 성당을 가봤고, 다양한 곳에서 미사를 드렸다는 생각이 말이다. 


찾아보니 성당 기행과 관련한 글을 쓰신 분도 계셨는데, 다만 나는 성당을 여행으로 갔다기보단, 아니 비슷할까? 여행으로 갔던 성당도 있었고, 해외에 거주하면서 내게 맞는 성당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가끔 상황에 따라 제일 근처에 있는 성당에 가기도 했다. 어쨌든 늘 일관되게, 나의 주된 목적은 주일에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나라, 캐나다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전례가 어떻게 다른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다른지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문득 이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여느 중학생이 그렇듯이, 좁은 생활 반경 안에서만 살다가 그곳을 처음 벗어나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한강까지만 지하철로 타고 놀러 가도 "오늘은 큰 탐험을 했어!" 라며 뿌듯해하던 중학생 아이가 그 한강 너머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3년간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고, 작았던 세계는 점차 커지고 넓어졌다. 내 인생 중 가장 소중하고 귀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정말 특별한 시간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주말에도 학교 기숙사에 머물게 되면서 나는 근처 성당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세례를 받았고, 초등부 중등부까지 보냈던 수서동 성당에서만 미사를 드렸다면, 이젠 처음으로 다른 곳에 자발적으로 가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우연은 아니었겠지만, 학교 근처에 있던 제일 가까운 성당은 유서 깊고, 중요하고, 주변에 신학교도 있으며, 이때는 몰랐지만 후에 정말 많이 가게 된 가톨릭 청년회관이 근처에 있는 "혜화동 성당"이었다.


마침 그때의 나는, 내가 아직도 그리워할 정도로, 그리고 한 때 다시 그때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열렬히 기도했을 정도로 신앙심이 넘쳐났던 학생이었다. 신앙심이 넘친다고 하면 조금 그럴까, 그냥 늘 주님과 함께 있다는 기분이었다. 윗눈썹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고 몇 바늘이나 꿰매야 했을 때도 나는 내 눈이 다치지 않았음에 감사기도를 드렸고, 처음 겪어본 급성장염으로 장염 인지도 모르고 대충 약을 주워 먹다가 더 심해져 길을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해야 했을 때도 성당에 들어가면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던, 이런 소소한 은총과 축복을 감사히 누리던 학생이었다. 그런 나를 더 풍성하게 채워준 것이 혜화동 성당이었다.


그리고 이 혜화동 성당을 시작으로, 작았던 아이는 세상을 넓게 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었고, 새로운 곳에 자유로이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받았던 은총이 아직 남아있어서, 무언가 "적극적으로 성당 활동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고, 어쩌다 보니 학교의 특성 덕분에 정말 깊이 빠질 수 있었고, 다양한 성당을 만나고, 이곳저곳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안타까운 한 가지 사실은 몸이 바빠지면서 오히려 마음이 멀어졌던 것인데, 이 이야기는 후에 차차 다른 성당의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가고자 한다. 


우선 성당이 있다. 나는 미사를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을 방문한다.

그리고 미사를 드리며 사람을 본다. 때로는 그 지역, 그 동네의 사람들만 있기도 하고, 때로는 나처럼 두리번거리며 이곳에 처음 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미사의 전례에서 느껴지는 그곳의 문화를 느낀다. 같은 나라여도 성당마다 존재하는 그 특별한 문화를 어렴풋이 느껴본다.


내게 성당은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집과도 같다. 그 어떤 낯선 곳을 가더라도 성전에 들어서면, '이곳의 전례는 어떠할까'라는 약간의 불안감은 있지만, 편안한 마음이 든다. 가톨릭 신앙이 아예 없는 곳에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드는 치기 어린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교회 성당도, 그곳에 주님이 계시다면 친근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들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사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가고, 보고, 느꼈던 모든 성당들을 나열할 수도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몇몇은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고, 내 떠돌이 삶을 뒤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이 성당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은, 내 인생이 이곳과 많이 맞닿어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어쩌면 순서대로 이야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또 중간에 멈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날 때. 나의 흐릿한 과거가 선명해질 때. 

나의 세계성당기행기를 찾고 싶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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