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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송 Sep 18. 2019

다정한 관찰자의 서재

편히 내려놓으세요, 당신의 슬픔을


"내가 어떻게 이 바다 위에서 살아남을지 나도 궁금해

수많은 새들이 날아오는 섬 하지만 나에겐 거짓말 같은 배

화려한 것들이 결국 다 날아가버려도 외롭진 않겠네"


검정치마, 2집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수록곡 '앵무새' 중에서




언제부터였을까, 숨을 참는 버릇이 생긴 것은. 숨을 한껏 들이 마셨다가 한 번에 내쉴 때면 왠지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소독약 냄새가 날 것 같은 찌르는 듯한 아침 햇살 사이로 현관문을 나설 때면 괜히 한 번 숨을 고르며 오늘도 힘내보자고,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나는 어딘가 별났다. 여기서, 이 별남은 특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두겠다. 엄마가 책을 뺏을 정도로 책읽기에 푹 빠져있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서 들꽃과 나무를 구경하고 남모를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좋았다.


내가 기억하는 이질감의 시작은 중학교 1학년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어린 아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주 어울려 놀던 여자 아이들 무리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작았던 다툼은 이내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으로 번져서 삽시간에 전교생에게 퍼지게 되었다. 결과는 뻔했으니 그 이상은 서술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세상이 버텨야만 하는 곳이 된 것은. 혼자서도 괜찮아야만 해서, 혼자라고 무너질 수는 없어서 내가 나를 다잡고 하루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렇게 무너지고 싶지 않았던 내가 조금씩 쌓아올린 벽은 견고한 성이 되었고, 지금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얼핏 나를 야무지고 독한 사람으로 평가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는지, 다 지난 일이니 이젠 괜찮은거 아니냐고 내가 아닌 당신들의 입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는 것에 나는 얼마나 또 마음이 아픈지, 아마 모를거다.


그저 조용히 나를 다독이며 버텨내야만 했던 하루하루가 쌓여 십 년이라는 세월이 된 지금, 애석하게도 내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도 가끔은 시리고 때로는 아프다. 이제는 괜찮아질 법도 한데, 여전히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은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십 년 전의 내가 그대로 우두커니 울며 서있는 것만 같아, 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다정한 관찰자의 서재


흔히 '관찰자'라는 단어에는 '예리한', '날카로운', '차가운'과 같은 수식어가 함께 따라붙는다. 아마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차이점이나 의문점을 집어내어 사건과 현상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특징적인 모습을 묘사하기 위함이리라.


그러나 나는 기꺼이 '다정한 관찰자'가 되고 싶다. 당신과 나의 차이점을 들어 애써 우리의 경계를 가르기보다는 서로의 다른 부분들까지도 안아주고 싶다. 마음을 에이는 한기 속에서도 주머니에 손을 꽁꽁 숨기고 혼자서만 다급히 걸어가기보다는 멈춰서서 당신의 얼어붙은 손을 녹여주고 싶다. 그래야만 나 또한 당신의 온기로 한층 더 따뜻해질 수 있음을 안다.



사색을 위한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자 서로의 꿈과 희망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 바로 서재가 아닐까. 비록 물리적으로 당신과 함께할 수는 없지만, 나는 여기 이 공간에 우리를 위해 '다정한 관찰자의 서재'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실제로 책을 읽은 뒤 내게 떠오른 생각이나 감상을 적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며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다정한 관찰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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