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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Jun 14. 2020

인간탐구


이상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인간상을 만나게 된다는데 내 세계는 너무나 조화롭고 평화로웠다. 가끔 나를 의문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잠깐만 시간을 내어 고민해보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모두 비슷한 원리로 움직이며, 이를 기반으로 나는 노력을 들인다면 그게 누구든 모두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럴 마음이 드는 경우는 좀처럼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2017년 12월 22일, 우리 가족은 십여 년 넘게 살던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내가 이사 온 새로운 동네에 정착해나가는 동시에 어머니는 새롭게 정착할 교회를 물색하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이전에 다니던 교회와 (아주 조금의) 인연이 있는 , 총성도가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교회였다.


나는 1년도 되지 않아 교환학생을 떠날 몸이었고, 그리고 신앙심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는 신앙심의 유무에는 관심조차 없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결정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일처럼 그저 나에게 일어난 일들 중 하나였다.


우리 가족은 다들 큼지막한 체구를 가진 장정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단연 눈에 띄었고,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작은 교회에서는 더욱 탐이 나는 일꾼들이었다. 그 과정의 첫 스텝으로 나에게 청년부 모임에 참석하라는 제안이 계속 들어왔다. 심지어 모임을 간다고 일단 맞닥뜨린 상황을 무마한 다음 예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가는 기만적인 태도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나를 붙잡았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어느 일요일, 목사님의 따님이자 청년부를 이끄는 혜민, 그리고 다른 한 여자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교회에 남았다. 순조롭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잠시 낯선 여인에게서 어딘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사시에 도드라지는 사각턱을 가진 여자. 나에게 던진 여자의 첫 질문은 남자 친구가 있는지였고 뒤이어 소개팅을 해봤는지 미팅을 해봤는지를 꼼꼼히 조사했다. 여자의 관심사는 온통 남자뿐이었다. 이러한 여자의 뜨거운 열망을 감지한 지인이 얼마 전에는 베트남 남자와의 결혼 주선을 자처했지만 여자는 그것만은 수락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상한 기운은 결코 외적인 요소에서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



공짜 음식에 이끌려 나간 첫 번째 청년부 회식에서 그 이상한 기운의 결코 일회적이 아님을 확인했다. 여인의 이름은 조보희, 29살, 무직이었다. 여자의 유일한 사회활동은 교회에서 (대학에서 전공한)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초등학생을 지도하는 일로 모든 일상이 말 그대로 교회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관심사는 의외로 연애와 결혼이었다. 나와의 첫 만남에서 밝혔듯 자신은 25살에 결혼을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고 4년이나 지난 현재도 그 일에 지나치게 강렬한 울분을 토해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24세 그 당시에도 현재도 남자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복권을 사지도 않고 당첨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모양새였다. 여자의 분노는 여자의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당일 오전, 여자가 지도하는 주일학교반의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그에게 곡을 쳐달라며 악보 한 장을 가지고 왔었다고 한다. 그 악보는 공교롭게도 결혼행진곡이었고 여자는 그 학생이 자신의 미혼인 처지를 놀리려고 그런 것이라며 크게 분노했다. 장난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분명 아니었다. 그 뒤,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가 얼마 전 연인을 사귀게 된 사실이 자신의 “울화통을 터지게 한다”는 말을 이어가는 여자는 진심이었다.



내가 아는 한 교회는 교회라는 체제 안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을 장려하는데 혹시 정 급하다면 그 교회 주소를 알려달라고 말하라.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이 말을 농담이랍시고 건넸다. 그때였으리라. 여자와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공기 가 묘하게 바뀌었으나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뜨거운 기름이 튀는 바람에 경미한 화상을 입은 나의 손이 고기를 구워내는동안 집게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으며 고기가 익기 무섭게 날름날름 집어먹는 모습과, 사이드로 나온 순댓국이 남성들의 음식이라서 좋아할 수 없다는 둥의 발언을 이어 나가는 여자를 보며 나는 모든 희망을 버리고 그저 이 여자와의 인연이 깊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기로 마음먹었다.


고기를 먹고 카페로 향하는데 여자는 나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우며 배시시 웃어 보인다. 나는 상황 파악이 안 됐지만 우선 황급히 팔을 빼냈다. 우리끼리의 비밀이라도 되는 듯 나에게 정 급하면 연락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를 보자 방금 전 상황은 몇 분 전 나의 세 치 혀가 자초한 일임을 깨달았다.

카페에서도 여자의 관심은 오직 나뿐이다.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게 나인 오리 새끼처럼 나만을 쳐다보며 말을 건다. 테이블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라치면 한숨을 푹푹 쉬거나 테이블에 엎드리는 여자 덕분에, 난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여자의 속내는 질문을 통해 공통점을 찾고, 이를 기반으로 친밀감을 쌓으려는 일반적인 사회화 방법을 시행하고 싶었던 듯하다. 다음은 그녀의 질문들 몇 가지이다.


-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 네일아트 받아봤어?

- 너도 손에 이거 있어? (이것은 주부습진이었다.)


이외에도 웬만한 호기심으로는 궁금해하지 않을 질문들에 시달리는 나는 천천히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집으로 가는 길. 방향이 같았던 여자와 나는 같은 차에 탔다. 운전자는 한 청년이었다. 차 안에서도 여자의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좋아하는 동물에 대해 물어 답하니, 대답을 들은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나열하더니 갑자기 귓속말을 건다. 귓속말을 하는 시늉을 하고 있긴 했지만 차 안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여자뿐이었던 터라 조용한 차 안은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근데 나 저 사람(운전석의 청년)한테도 물어봐도 돼?”


결정타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고 웃음이 났다. 몰래카메라임을 알리는 신호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싶을 심정이었다. “네, 하세요.”라는 내 허락에 여자는 청년에게 좋아하는 동물을 묻는다. 청년은 태연하게 답한다. 여자를 청년에게 맡기고 영양가 없는 대화를 엿들으며 실실 웃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내 안에 가만히 담아둘 수 없는 이야기다. 신발을 벗자마자 거실에 계시는 부모님께 달려가 토하듯 오늘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오오. ‘그런 사람도 있는 거야’라는 아버지의 말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며칠 뒤, 친구들과 ‘내일로 기차여행’을 떠날 때도  여자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자가 한 질문들은 원초적인 동시에 일상적인 주제들이어서 무얼 봐도 여자의 질문이 연상되었다. 2박 3일에 여행에는 여자의 잔상까지 4명이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야 난 마침내 여자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 후, 여자와 나 사이에는 교류가 없다시피 했다. 예배당에서 자리를 찾아 걸어가는 와중에 마주치면 목례만 하는 정도가 다였고, 요전 날 얕은 대화를 나눴던 밤은 꿈처럼 평화로웠다.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고, 어느 날 밤, 운동 후 샤워를 마친 나는 건강한 내면과 외면을 지닌 채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 여자다. 그 여자로부터 여러 개의 메시지가 연달아 와 있었다.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투척이었다. 모든 게 거슬렸다. 이때다 싶어 선배 노릇을 해보려는 것, 그 대상이 나라는 것, 문장 끝마다 빼놓지 않는 ‘~~^^ ㅋㅋ’에 몸서리가 쳐졌다. 오목조목 반박할까 생각해봤지만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메모장에 남겨두고 채팅방을 떠났다.


다음은 그 메모이다. 정말 재밌으니 읽는 것을 추천한다.


1. 아참..단톡은 들어오고 나가지망~^^알았지 피치못할사정 아니면..^^

>> 우선 단톡 나가고 말고의 자유는 저의 오롯한 권리이기 때문에 관여하실 사항이 아닙니다.

2. 모임이나 교회 행사관련해서 니가 안가더라도 보다보면...

>>  말줄임표에 생략된 말이 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할 생각 없습니다.

3. 가끔가다가 회장오빠에게...건의할거 있음 단톡에 올리고...^^

>>  네. 근데 제가 이 정도 판단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 같아 기분이 언짢네요.

4. 몇살이더라..^^?듣고 까먹어서~^^

>>  23살입니다.

5. 혜민(목사님 따님)은 나보다 훨씬..바쁘니깐..내가 훨씬..시간이 널널하니깐...^^가급적이면.나한테 말하는게 낫겠 다..^^ㅋㅋ

>>  뭘 말하라는 건지 목적어를 확실히 해두시는 게 좋을 듯하네요. 나이라면 위에 적어두었으니 참고하세요.

6. 우선 자매들끼리 친해지는게 우선인듯..오빠들은 나중에..^^ㅋㅋ동생들도 동생나름이지만~^^ㅋㅋ

 >>  자매든 오빠든 동생이든 친해지시든지 마시든지 알아서 하시고 웬만하면 전 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쓸데없이 ...^^~ㅋㅋ을 남발하시면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는 거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연락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끝끝내 보내지 못한 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여자는 여전히 면대면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종종 저런 메시지를 보내 나를 화나게 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내 절친한 친구인 정은과 나는 돈은 없으나 시간은 많았고, 놀고 싶은 마음 또한 컸다. 교회에서는 여름맞이 청년부 화합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원래는 단 둘이 만나 놀 생각이었으나 어쩐지 정은을 교회 행사에 데려가 같이 노는 것이 좋은 생각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입이 마르도록 얘기했던 그 여자의 실존과, 내가 느꼈던 그 강렬한 감정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공짜 밥도 좋았다.


정은과 함께 도착한 교회. 여자는 항상 맨 뒷자리에 앉고 우리 가족은 앞쪽에 앉았던 터라 나는 여자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여자의 유일한 사회생활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나는 그녀가 신실한 신자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행사 시작 전, 목사님께서 짧게 말씀을 전하셨고, 처음으로 여자 맞은편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 십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여자는 크게 하품을 하고, 곽티슈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질린듯한 표정으로 책상에 엎드려버린다. 그녀의 옆에선 누구라도, 나조차도 신실하고 독실한 신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목사님이 떠나시고, 점심시간이 되자 여자는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여자는 나와 같이 오늘 자신의 친구를 행사에 초대했다. 근래에 연인을 만났다던 그 친구였다. 여자는 나와 정은에게 영화관에 가봤냐, 여행 가봤냐 등을 물 었다. 놀랍게도 여자는 영화관도 여행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둘은 화들짝 놀란다. 정은은 이 경험을 통해 훗날 내가 여자에 대해 전한 말들이 한치의 과장도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보드게임을 하는 시간이 왔다. 한 명씩 육각형 모양으로 생긴 여러 얼음조각으로 이루어진 빙판을 망치로 부숴 빙판 위의 펭귄이 떨어지면 지는, 패자는 손목을 맞기로 한 보드게임을 했다. 여자는 범상치 않았다. 여자는 순전히 운에 자신의 손목을 맡긴 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빙판의 안정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투명 안대라도 낀 듯 아무 얼음조각이나 망치로 내리치는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당연하게도 게임이 끝나가자 여자의 손목에는 벌건 자국이 짙어져 갔다. 그녀는 잠시 이를 앙 문채 자신의 손목을 내리치는 내가 자신에게 쌓인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의심했지만 봐주면서 게임하는 건 재미가 없다는 내 말에 이내 의심을 거두었다. 보드게임은 참 재밌다.


나와 정은은 당시 볼링에 깊게 심취해있었다. 이에 볼링장에 가자는 의견을 조용히 지속적으로 중얼거려 다음 목적지를 볼링장으로 설정해냈다. 평소 나의 실력에 미치지 못하던 정은이 놀라운 실력으로 팀 내 순위권을 다투는 실력자가 된 것에 놀랍지만 여자의 볼링 실력보다는 아니다. 여자는 볼링공이 무서워서 볼링을 쳐보지 못했다고 했었다. 겨우 두려움을 이겨낸 여자는 양손으로 볼링공을 들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공을 50cm 앞 거터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고, 천천히 이동하던 공은 이내 멈춰버렸다. 서너 명이 다가와 그녀를 도왔지만 끝끝내 공을 한 손으로 밀지 못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의 맘에 큰 감동이 일었다. 끈기 있게 여자를 가르쳐주려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포용력과 나의 그렇지 못함을 봤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휴학으로 머릿속에 빈 공간이 많아진 내가 여자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르 겠다고 느꼈다.


어쩌다 보니 또 혜민과 여자, 나는 다시 모여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와 연락을 끊고 싶은데 계속 연락이 온다는 것이었다. 이를 접수한 나와 혜민은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여자는 동일한 종교를 기반으로 만남을 주선하는 데이팅 앱에서 40대의 남자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지만 40대라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려 그만 연락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여자의 주장과는 달리 채팅창 안에서는 사뭇 다른 내용이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피아노로 찬양 반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며 기뻐했고, 여자는 부드러운 그림체의 이모티콘을 동원하며 자신은 애교를 잘 부리지 못한다고 말하면서도 ‘서방님’등으로 남자를 호칭하고 있었다. 아무리 남이라지만 여자를 도와줘야 했다. 혜민과 나는 당장 채팅방을 나오고 앱을 지울 것을 권했고, 여자의 핸드폰에 깔린 비슷한 앱 두 개를 더 지운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여자가 사회경험이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없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여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교까지 나온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쳤을까? 여자의 어머님 또한 교회에 출석하셔서 이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쉬웠다. 답은 부정적이었다. 여자의 어머님은 여장부처럼 호탕하며 유머감각 또한 출중했고, 아직까지도 직장을 다니고 계셨다. 요즘처럼 남들의 생각에 휩쓸리기 쉬운 시간을 모두 거치면서도 여자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사실은 나의 호기심을 계속해서 자극하며 한편으로는 그 꼿꼿함에 감탄하게 만든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청년부 모임이 있었다. 곧 떠날 사람인 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모임 장소로 향하는 차 안, 여자는 또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우리 가족이 교회의 새가족이 된 후, 얼 마되지 않아 청년부에 내 또래의 두 명의 청년이 또 들어왔다. 여자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들에게 수차례 인사를 건넸으나 무시당했다는 고민이었다. 그들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기에 난감했다. 동성애자 부부에게서 자란 아이가 그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입장처럼 막막하게 느껴졌다. 여자의 잘못 또한 결코 아니었다.


이 주제를 빨리 넘기기 위해 공통 관심사를 찾아보라는 (비현실적이지만) 일반적인 조언을 건넸으나 여자는 자신의 머릿속 뫼비우스 띠에 갇힌 듯 계속해서 똑같은 고민을 칭얼댄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모두 친해질 수는 없으며, 만약 상대방이 친해지길 원치 않는다면 상대방이 좋은 친구를 만들 기회를 놓친 것이므로 그의 손해일 것이라고 말하자 띠에 조금은 균열이 간 듯했다.


한 고비를 넘기자 여자는 또 결혼 타령을 시작했다. 떠날 사람이라는 위치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평소 한 사람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도돌이표로 가득한, 여자의 결혼 타령 악보를 들어주기 지쳤으며, 여자는 어차피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입을 열었다. 현재 여자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힘이 없으므로 어쩌다 결혼을 한다 해도 그것은 물건처럼 팔려가는 것과 다름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 경험을 쌓아보라는 내 말에 어머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한다는 여자에게 나이가 서른이면 그런 허락이 필요 없다는 것, 몇 년째 준비 중인 자격증 공부, 작가가 되고 싶어 하고 있는 글쓰기, 조금씩 배우고 있는 베트남어 중 한 가지만 선택, 집중하여 경제적으로 독립을 이룰 것을 조언했다. 말문을 떼기 시작하자 댐이 부서진 듯 말이 쏟아져나왔고, 말을 마치고 나자 애초에 내 말을 들을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 말이 필요 없을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했다고 느끼며 조금 후회가 됐다. 오늘만 넘기면 됐었는데 말이다.


여자의 표정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었는데 차에서 내리며 여자가 한 말은 뜻밖이었다. ‘네 말을 들으니까 누가 망치로 머리를 때린 듯했다.’라고 말을 한 것이다.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인지 긴가민가하고 있는 사이 여자는 이내 다시 청년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첫 번째 고민으로 돌아간다.


여자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들은 희미하다. 한 청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자신을 자신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에 놀라는 동시에 부끄러워하며 “뭐, 그렇게 부르세요.”라고 새침하게 말하며 주변을 경악하게 했던 것, 그리고 통상적으로 여성의 이름으로 쓰이는 이름을 가진 청년을 내가 여자로 착각한 것에 길게 포복절도하여 주변을 당황스럽게 했고, 이에 내가 이름을 가지고 웃는 건 예의가 아닐 수 있다고 쏘아붙인 것이 마지막이다.


나 또한 흠이 많은 사람이다. 당시에는 모르더라도 지난날을 돌아보자면 어리석고, 부족했음을 느끼고 앞으로도 결코 완벽해질 수 없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여자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으며 그저 그녀의 의견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꽤 흘렀고, 그 이후로도 나와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여자만큼의 충격을 준 사람은 없었다.


글을 마치며 한 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점은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상이라고 정한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를 절대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더욱 엄격한 규범을 만들어내고, 또 이를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결국 배제시켰던 사람 또한 소외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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