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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Jul 18. 2023

DAO 책 저자 중에 DAO 소속은 없다는 아이러니

<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 27편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DAO 관련 도서들이 몇 권 출간됐다. 그 책들의 저자 소개를 훑어보고는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아는 이름들이 없었다. 그동안 DAO에 대한 취재를 하고 밋업도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에서 DAO를 대표할 만한 사람들을 몇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책의 저자들 중에 그들의 이름은 없었다. 저자 소개도 훑어봤다. 커뮤니티 운영자, 회사 브랜드 총괄, A매체 PD, B매체 기자, 벤처캐피털리스트 등등... 참으로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이 DAO 관련 글을 펴냈다. 그중 자신이 특정 DAO의 소속임을 밝힌 사람은 없었다.


스타트업에 대한 책은 스타트업 소속이거나 적어도 스타트업을 경험한 사람이 쓴다. 만약 대기업에만 다녔던 사람이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의 책을 발간한다면 '스타트업이나 다녀보고 얘기를 꺼내라'라는 힐난을 받을 것이다. 주위에서 대기업만 다녀본 지인들이 "스타트업에서는 대기업처럼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펼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몸 담아본 사람들은 대출 거절 등의 불이익, 회사의 존속성에 대한 불안감에 부딪힌다. 


DAO도 마찬가지다. "DAO가 어떤 점에서 한계는 있지만 몇 년 안에는 기업 문화를 바꾼다"는 주제는 개념론적 접근법으로만 다가온다. 정작 DAO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저런 주제에 회의감을 느낄 법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DAO 소속으로 살아보려는 시도를 해봤다.


퇴사를 앞두고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은 국내 C 블록체인 업체가 운영하는 DAO였다. 이전에 해당 업체의 DAO 실험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해당 DAO에서 개발자뿐 아니라 리서치 직군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회사(C 업체)에서 DAO로 소속을 바꾼 사람도 있다"는 말에 매료됐다. 내가 그 인터뷰이에게 연락한 시점은 인터뷰로부터 약 7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앞으로 그 DAO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살짝 들뜨기도 했다.


"잘 되지 않아서 운영을 안 하고 있어요."

답변에 맥이 풀렸다. 인터뷰 당시 "앞으로 DAO가 고용 시장을 바꿀 것"이란 포부를 비치던 인터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다른 사람을 통해 이더리움 재단이 지원하는 DAO를 소개받기도 했다. 18주 동안 DAO에 대한 심층 연구를 진행하는 DAO였다. 또다시 희망에 부풀어 오리엔테이션에 들어갔다. 새벽에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가 외국인이었다. 당연히 영어만이 오갔다. 글로벌 조직이라면서 서구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이러니에 무릎 꿇어야만 했다. (그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리서치 난이도가 무척 높기도 했다.) 


뱅크리스 코리아 활동은 할 만했다. 웹3 콘텐츠 플랫폼을 운영하는 DAO인 '뱅크리스(Bankless)'의 영어 콘텐츠를 한국어로 번역해 배포하는 일이었다. 뱅크리스 코리아 차원에서도 일반 법인처럼 BM을 고려하는 모습에 신뢰가 가기도 했다. 번역 외에도 내가 원한다면 행사 취재, 인터뷰, 네이티브 콘텐츠 연재 등의 활동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실제로 접한 DAO 중 내게 가장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곳이었다. 


(이전에 DAO 형태로 운영되던 'Loot Explorer'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NFT까지 사서 가입했지만 일을 한다는 성취감이 아닌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기분만 드는 바람에 얼마 못 가 그만뒀다.)


그럼에도 결국 한계에 봉착했다. 뱅크리스 코리아 구성원으로서 2개월 동안 꾸준히 위클리 콜에 참석하고 주어진 업무는 수행했지만 그 이상을 하겠다는 의지는 쉽사리 들지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인센티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DAO 활동이 그 당시 내가 겪고 있던 커리어 고민을 완전히 해소해주지도 못했다.


이것이 내가 결국 직장인으로 돌아간 이유다.


DAO가 의미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게 "2~3년 안으로 DAO가 기업을 대체한다"는 생각은 낙관론으로 다가온다. DAO가 잘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처럼 일반 기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대체로 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DAO 관련 책에서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기업을 DAO 형태로 운영하려고 하거나 기업을 뛰쳐나와 DAO에 입성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떠올리길 권하고 싶다. 


베트남 전쟁 때 8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잡혀있던 스톡데일은 자신이 언제 풀려날지 모른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수용소 안에서도 최대한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반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는 자신이 풀려날 것이라고 낙관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DAO를 알아가려는 당신은 스톡데일인가, 아니면 낙관주의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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