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 28편
DAO의 첫 글자 ‘D’는 ‘탈중앙화(Decentralized)’를 의미한다. 그 단어가 가장 먼저 붙을 정도로 탈중앙화는 DAO에서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사실 DAO 이전에도 탈중앙화를 표방한 조직으로 DAC(Decentralized Autonomous Corporation)가 있었다. 비트셰어/스팀잇/이오스(EOS) 창시자인 댄 라리머는 2013년 9월 중앙화된 주체 없이 스마트계약으로 운영되는 기업인 DAC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2014년 7월 DAC를 표방하며 은행, 증권 거래, 경매, 복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트셰어(Bitshares)를 공개했다.
비트셰어는 BTS라는 토큰을 발행한다. 비트셰어가 DAC인 만큼 BTS는 화폐의 성격을 가진 다른 가상자산과는 달리 보통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비트셰어에서 담보를 맡기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오직 BTS 토큰만이 담보로서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DAC라는 개념은 그리 확산되지 못했다. '탈중앙화'를 표방하기 위해선 그 조직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부 정보를 독점한 특정 주체가 중앙화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Corporation)으로 운영되는 DAC가 마냥 투명한 조직으로 운영되기란 어려웠다.
2014년 이를 대체할 DAO라는 개념이 이더리움 백서에 처음 등장했다. 비탈릭 부테린은 백서에서 “그동안 탈중앙화를 표방한 조직들은 전통적인 법인이나 비영리 단체의 한계를 계승하면서도 블록체인 기술만 가져다 썼다”라며 “지금까지 탈중앙화 조직은 대체로 배당을 받는 주주와 주식을 가진 DAC의 자본주의적 모델을 채택했다”라고 DAO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DAO 개념을 고안할 때 영감을 받은 것은 다니엘 수아레스가 2006년 발간한 SF 소설 <데몬(Daemon)>이었다.
<데몬>은 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하 '데몬')의 창시자(매튜 소볼)가 사망한 이후 활성화된 데몬이 분산 처리 시스템들을 활용해 ‘탈중앙화된 혁명’을 일으키는 내용을 다룬다. '매튜 소볼'이라는 특정 주체가 아니라 이미 사망한 자가 만들어놓은 네트워크가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는 설정부터가 눈길을 끈다.
다니엘 수아레즈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도 전부터 DAO와 유사한 개념을 제시한다. 소설 속 데몬이 만들어낸 게임에서 이용자들은 게임을 통해 가상의 돈을 버는 동시에 각자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등급을 부여받는다. 이용자들은 더 나아가 자체적인 등급과 경제 생태계를 만들면서 가상 도시 ‘시카고’를 구축해 나간다. 또한, 이들은 디지털 세상과 물리적인 세상에서 서로 상호작용한다. 이는 현재의 플레이 투 언(P2E) DAO와 굉장히 유사하다.
DAO를 지지하던 사람들 중 DAO가 한 편의 SF 소설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06년에 일찌감치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제시한 소설뿐 아니라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소설 속 개념이 실제로 구현되는 모습 자체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