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진단을 내린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 상황에서도 병명이 궁금했다.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아이, 그래서 약물치료를 하면 아이가 훨씬 편해질 수 있다는 것, 아무래도 약물 치료가 조금 꺼려진다면 놀이치료는 꼭 해야 한다는 처방.
나는 도무지 믿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왜? 우리 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길래 약까지 먹어야 해? 그래서 굳이 병명이 듣고 싶었던 것이다.
“굳이 병명을 말하자면, 불안장애죠. 아주 약한...? 경도의 불안장애”
아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던 질문 또한 결국 물었다. 제발 아니라고 대답해주길 바라면서.
“그럼, 기질적으로 불안한 아이를 제가 잘못 양육해서 이렇게 된 건가요?”
“그건 알 수 없죠. 반대로 양육이 잘 돼서 그나마 뒤늦게 발현된 걸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는, 뻔한 대답. 하지만 나는 ‘아니’라는 확실한 대답을 원했고, 반대로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나 때문이야’ 라는 생각이 굳어져 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 때문이다. 조금 걱정이 많고,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아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였다. 아이는 또 의외로 대범한 면도 있었고, 자기의 의견만큼은 형아 누나와 달리 확실하게 말하는 당찬 면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가벼이 넘어갔다. 나 때문이다. 아이를 찬찬히, 면밀히 살피지 못한 나 때문이다.
그런데 또 그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겉으로 보기에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 등교거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검사 결과에 대해 들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별 문제도 아닌 것을 ‘긁어 부스럼’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 한 켠에서는 거부반응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이 오만에 확실히 쐐기를 박기라도 하듯, 원장님은, 우리 아이에게 확실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 했다. 엄마를 잃을까 봐 무척이나 두려워한다는 것. 놀이 검사 중에 인형놀이를 할 때면 아이는 ‘얘 엄마는 아파. 얘 엄마는 죽었어’ 라는 말을 주로 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에게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반응이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K.O시켜버린 가족 그림. 아이는 가족을 그리라는 요청에 달랑 형아만 그렸다고 한다. 누나의 존재까지는 모르는 선생님이 물었다.
“엄마 아빠는 어딨어?”
“엄마 아빠는 출장 갔어요”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소풍 가방 속 쿠크다스처럼 파사삭 부서졌다. 나만 혼자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던 걸까.
바쁘지만 다정한 엄마 아빠와 정서적으로 안정된 밝은 아이들 그래서 행복한 가정. 그 믿음 덕에 버티며 살 수 있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위험한 착각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