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발발] 읽은 사람 모여라!
나에게 처음 패배감을 느끼게 한 글을 기억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 문장이다.
“애기 엄마! 애기 모자 떨어졌어요!”
1995년. 학교에서 주최하는 수필 대회에서 그 아이가 대상을 탔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적어도 글쓰기에 있어서, 적어도 이 학교 안에서! 1등은 언제나 나였고 이번에도 당연한 결과가 나와야 했다. 2등 상장을 받아들고 나는 겉으로는 표내지 못하고 분노와 질투에 휩싸였고. 심사 결과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몇 달 후, 학교 문집에서 당당히 첫 페이지를 차지한 그 친구의 글을 읽고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사는 공정했고, 나는 졌다. 그러나 19살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은 끝끝내 오기를 부렸다.
치! 나도 18살 차이 나는 늦둥이 동생 있으면 이런 글 쓸 수 있어!
한창 예민한 사춘기 고등학생에게 늦둥이 동생이 생겼을 때, 그 부끄러움과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늦둥이 동생이 미움. 그러나 끝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던 그 귀여운 생명체를 바라보는 마음까지. 그 복잡한 감정의 변화가 어찌나 잘 표현되어 있던지,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어 그 아이의 글을 읽었다. 게다가 그 동생이 너무 예뻐서 ‘애기 엄마’ 소리를 들어도 팔불출처럼 좋기만 했던 그 사랑을 담은 마지막 문장은 어찌나 위트 있었는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아무리 오기를 부려도 알고 있었다. 똑같은 상황이어도 나는 결코 그런 글을 쓸 수 없음을.
역시 뭐든지 ‘첫’ 기억이 강렬한가 보다. 그 이후로도 너무 자주 얻어터져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글쓰기의 고수들을 만났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세게 얻어터진 것은.
그래서 나는 또 19살의 소녀로 돌아가, 되도 않는 오기를 부리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오기를 부리면서도 나는 끅끅 울고 말았다. 글쓰기 책을 읽으면서 울 일인가 싶지만, 도대체 내가 왜 우는지 알 수도 없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딘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존경스러웠고, 사람을 어쩜 이리 편견없이 볼 수 있는지 감탄스럽고, 닮고 싶었고, 이런 책을 내줘서 감사했다.
청소년이 이렇게도 속 깊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던가. 일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입맛 좋은 소녀들 덕분에 ‘청소년’에 대한 패러다임이 깨지게 되었다.
뭐야. 겨우 10대면서, 아마추어면서 왜 나보다 글을 잘 써. 질투를 하다가도 이런 글을 써준 덕분에 내 좁은 생각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책 [활활발발]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 하나는 단연 ‘나도 이런 글방을 만들고 싶다’였다. 나도 이미 ‘어딘글방’처럼 ‘합평’을 기본으로 하는 글쓰기 모임을 작게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여러모로 지쳐있던 참이었다. 활활발발을 읽고, 나 역시 ‘글방’에 대한 의욕이 활활 타올랐고, 발발거리게 되었다. 이런 글방을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_어딘 글방의 ‘엄마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안전한 독자와 합평이 있는 글방 <이지글방>을 곧 모집합니다 *
https://blog.naver.com/jiasoo/22340227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