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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치노 Oct 24. 2019

우리 모두 은수였고, 상우였다

[영화] 봄날은 간다



바람이 불었고, 경치는 벅찼으며,

소리는 좋았고, 그들은 봄 같았다.

흔들리는 대나무처럼 서로에게 동요다.

이는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에게 

시린 겨울 끝에 다가온 이었다.

작은 일렁임은 파도처럼 그들을 휩쓸었고

누군가의 연애가 늘 그렇듯 둘은 타올랐다.

꽁냥 거리는 연애가 봄처럼 흩날린다.    

  

영화는 그들의 감정에 대해 과하게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다.

대다수의 사랑의 이야기가

현실의 이야기를 가장한 판타지로서

‘영화’처럼 흘러가 관객들이 3자의 시선으로 지켜본다면,  

‘봄날은 간다’는 마치 관객 스스로 지난날 연애를 되돌아보게끔 한다.

연과 우연이 겹쳐 운명처럼 시작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내연애인 셈이다.

이별도 마찬가지.  

그들의 입에서 구구절절 마음을 읊게 하지 않으며,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연인이 외국으로 멀리 떠나지도 않는다.

영화는 일상 속 갈등과 망설임이

그들을 헤어짐으로 견인했다고 말한다.

인물 간의 서사를

우연과 비극으로 몰지 않으며,

일련의 소소한 과정들을 차곡차곡 보여준다.

생각과 일상의 조각들이 모여 감정을 완성하며,

그것은 늘 지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 모두 은수였고, 상우였다.

 처음 영화를 마주했던 10대 때는

은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상우였다.

'라면'으로 마음을 전했던 것처럼

은수의 마음은 인스턴트처럼 빠르게 식었다.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상우에게 마음이 기울고 상우의 감정에

공감을 표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20대에 다시 마주한 은수와 상우는

기억 속 인물과는 달랐다.

 은수는 실패의 경험으로 망설임이 당연했고, 상우는 따뜻하지만 조급했고 서툴렀다.

 그들 모두 틀리지 않다.

다만 사랑의 속도가 달랐을 뿐.

 속력 높을수록 급브레이크에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제동거리는 길어지고 

바큇자국이 진하게 남는.


사회인이 되자

은수가 이해됐고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됐다.

그저 순수함에 그치지 않고

철딱서니 없는 연인에게 사랑이 지속되기 쉬울까.

그녀가 이해된 대목이다.

영화는 상우의 시련 과정에 가족을 담았다.

은수가 현관에 빼놓은 자신의 짐에 그저 말없이 뒤돌아 간다. 속상하고 밉고 화가 날 테지만 그는 차나 긁는 소심한 남자다.

그런 그도 가족은 편하다.

평소였으면 지나갈 일에 짜증을 낸다.

하지만 가족의 이별 속에서

상우는 놓아주는 법을 배웠고 성장했노라 이야기한다.

 사랑이 타오르고 식어가는 모든 과정 속에

우리 모두는 상우가 아니며,

아니었고, 아닐 것이다.

 영화는 우리 모두 은수이며, 상우라고 말한다.



롱테이크의 반가움, 그리고 김윤아


 영화 <봄날은 간다>에는

 화면을 가득 담은 클로즈업도,

오버 숄더 숏도 없다.

 영화에는 배우의 투샷이 줄을 잇고,

게다가 롱테이크다.

 롱테이크는 자칫 지루한 인상을 줄 수 있지만 배우와 연기, 배경, 미세한 디테일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또한 리즈시절 이영애와 유지태를 투샷으로

길게 본다는 것은 감격해 마지않을 수 없다.

 타오르는 사랑은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로 한달음에 달려가게 한다.

 그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은

새벽 택시 씬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관람'하는 위치에서

 스스로를 투영해 사건의 '당사자'로

착각하게 만든다고 생각된다.

 소소하게 흘러가는 일상들을 한껏 멋 낸 구도와 현란한 편집으로 담아냈다면

지금의 <봄날의 간다>가 있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더.  

 우리가 영화 <봄날은 간다>를 떠올렸을 때 

어딘가 아련하고, 살랑거리며, 마음이 저렸다면,

그것은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울림 있는 그녀의 목소리와 서정적인 가사에 영화는 화룡정점을 찍는다.

영화와 동명의 이 음악은 엔딩크레딧과 함께 등장한다.

이 음악이 이별의 장면이나, 상우가 은수를 지워내며 성장하는 순간에 녹여냈다면

아마 뻐렁(?)게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 연출, 그 외에 것들로도 제 몫을 해냈고 충분하다.

자극보다는 감정의 동요가 영화에 관통하는 근본적인 정서 아닌가.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화와 음악 모두 대중에게 각인돼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봄날은 간다(2001.09.28)

드라마. 한국. 15세 이상 관람가

연출 허진호

이영애. 유지태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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