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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치노 Oct 28. 2019

82년생 앤 해서웨이

[영화] 인턴

최근 몇 년 간 가을이 되면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바로 주말 낮에 영화 <인턴>을 보는 것.

늦은 점심 후 따뜻한 코코아 한 잔과 감상한다. 편안하고 노곤해지는 기분이 참 좋다.

과일이 무르익기 기다리는 것처럼

적당히 쌀쌀하지만, 기분 좋은 햇빛이 함께하는 그런 날을 기다렸다.

맛있는 것 일수록 아껴뒀다 먹는 기분으로

이 가을, 영화 <인턴>을 맞이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

프라다를 입는 악마에게서 벗어난

앤 해서웨이가 어엿한 기업의 CEO로,  

정장보다는 가죽재킷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로버트 드니로가 연륜이 묻어있는 

인턴으로 한다.

처음 영화관에서 영화의 포스터를

마주했을 때가 기억난다.

두 배우 모두 믿고 보는 배우라 반가웠으며,

둘의 조합이 흥미로웠다.

'경험 많은 인턴과 열정 많은 CEO'라는 양상 구도가 눈에 띄었다.


나는 영화 '세잘알'이라도 된 냥 내용을 예상했다.

"나이 많은 저 인턴은 꼰대일 것이며,

젊은 CEO는 열정만 많은 그 역시 젊은 꼰대일 것.

둘은 첫 만남부터 사사건건 대립할 것이며,

그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그렸겠지.

그러다 결말은 훈훈하게 마무리겠지.

보나 마나야"라는 시건방진 예측을 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억측이었다는 것,

그동안 MSG에 참 많이 길들여져 있었구나 라는 것을 영화 시작 1분 만에 느꼈다.

로버트 드니로, 그러니까 벤이 띠고 있는

표정과 태도, 극 전반에 흐르는 감성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대하는 나의 시선이 참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과밭에 나타난 계산기 

부끄러움은 지속됐다.

전반적인 감성은 힐링인가 보다,

아름다운 우정을 그리려나보다 라고

마음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내 입맛은 생각보다 더 자극에  길들여졌나 보다. 

젊음이 활어처럼 날뛰는 스타트업.

과수원이라도 된냥 '사과 기기'로 꽉 찬 그곳에서도 과연 벤이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벤만큼 연륜이 묻어있는 엔틱한 계산기와

필통을 보고 당황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표하는

젊은 직원들과는 당연히 마찰이 빚어지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줄스가 중재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정말 영화척척박사 납셨다.

당연히 '또' 나의 1패였다.


친화력과 연륜, 센스까지 겸비한

벤은 모두에게 인기스타였다.

그는 과시하지 않았고,

꼰대 마냥 가르치려들지 않았다.

무한한 공감과 절제된 조언으로 그곳에 융화됐다.

손수건의 필요성, 와이셔츠의 힘,

삶을 바라보는 시선 딱 그 정도였다.

엄마와도 대면 대면한 줄스가 나이는 많은 데 게다가 '인턴'인 벤을 좋아할 리 만무하다.

당연했다.

줄스는 몇 년 새 회사가 급성장해 행복했지만 그만큼의 무게감과, 거기에 수반되는

삶의 부침에 버거워하던 참이었기 때문.

하지만 영화는 줄스에게 마음의 공간을 비워놨다. 

지금 당장 그녀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사회의 어긋난 시선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보다 삶의 이정표다.


그리고 이 영화가 참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줄스와 벤 사이의 묘한 텐션이 없는 것이다.

약 30살 이상 차이나는 남녀의 로맨스는 아무리 할리우드일지라도 '유교걸'인 나에겐 버겁다. 싫다.

영화에서 세대를 초월한 것은 오로지 우정이었다. 혹 작은 텐션이라도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을 지경.

벤이 동년배인 사내 마사지사와 썸을 타니 그리 기쁠 수가 없었다. 그 부분에서 '이 영화 정말 좋은 데'라고 무릎을 쳤다.  

영화는 늘 앞통수가 아닌 뒤통수를 쳐대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

너를 온전히 공감하고 있다는 위로와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 말한다.  


또 영화는 마냥 잔잔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코미디라는 장르에는 살짝 아쉬운감이 있지만 중간중간 할리우드식 유머가 있었다.

빵빵 터지는 박장대소는 없지만,

러닝타임 내내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이보다 더 즐거운 게 또 있을까.

 


82년생 앤 해서웨이 

영화를 그저 엄마 미소로 바라보다

늘 짜게(?) 식는 부분이 있다.

바로 줄스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과

부당한 대우였다.

여성을 대하는 사회의 편협함은 참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뤄지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하게 벤처를 성장시킨

업의 CEO인데,

그가 남자였어도 새로운 경영진을 찾았을까.

세상에서 여자를 지우기 위해 안달 난 것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지구 반대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못마땅해하는 것은 주주들 뿐만이 아니다.

그의 가정에서도 비극은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줄스의 역할을 단어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일명 슈퍼맘라 표현했다.

가정도 회사도 모두 완벽하게 해냈다는 뜻인데,

왜 이 단어는 여성에게만 부여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슈퍼파파는 없는 것인가.

여성은 사회에서 아무리 커리어를 쌓아도  

왜 엄마로서 치부되는 것인지

비통한 노릇이다.

영화는 가정의 소중함, 가족의 중요성을 넘어

여성 사회인에게

그것은 필수 덕목이라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을 놓치고 사회서 인정받으면 의미가 없다고 회초리질한다.

엄마와 아내로서 충실하지 못하면 배우자가 외도하며 삶의 금이 간다고.

배우자의 외도조차 아내의 귀책으로 몰고 가며

김치 싸대기, 아니 피자로 싸대기는 때리지는 못할 망정 그를 용서하는 것은 고구마 100개의 답답함이었다.


극 중 인물들이 어떠한 사건을 마주하고 그것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성장한다는 의미는 좋다.

하지만 여성 관객인 나에게 이것은 알고 싶지 않은 비극적인 '인생의 스포일러'에 그치지 않는다.

스포 당했다.

비록 기업을 일궈낼 만한 그릇은 못되지만

그렇다면 그보다 더 암울한 날이 기다릴 것만 같은.


우연찮게도 앤 해서웨이도 82년생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

그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짐을 지고 출발선에 섰을 것이다.  

그가 동시대 비슷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다수의 남자 배우들보다

현저히 낮은 개런티를 받고 있다는 것도

영화를 완성하는 한 부분 아닐까.


달달함과 쌉싸름함이 공존하는 

코코아 같은 영화 <인턴>.



인턴(2015.09.24)

코미디. 미국. 15세 이상 관람가

연출 낸시 마이어스

앤 해서웨이. 로버트 드니로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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