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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혁 Jun 17. 2024

멀티버스, 종합예술, 산업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리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이하 '에에올')는 미국으로 이민온 중국계 가족들의 갈등과 이야기를 멀티버스와 접목시킨 독특한 영화입니다. 연관 짓기 힘들어 보이는 "가족"과 "멀티버스" 두 개의 키워드를 감독의 개성으로 녹여낸 에에올은 이 영화가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왜 뛰어난지를 알기 위해 3가지 관점을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첫째로는 제작의 주체였던 감독들입니다. 다니엘스라 불리는 두 감독(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은 가족관계는 아니고 이름이 다니엘로 동명이인인 친구 감독입니다. 에에올은 두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고 그전에 스위스 아미 맨 이라는 장편 데뷔작이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영화계 데뷔 이전에는 주로 독특한 감성과 유머코드를 갖춘 뮤직비디오 제작으로 유명했던 감독들입니다. 뮤직비디오 제작 이력과 이야기에 대한 상상력이 만난 결과물이 바로 에에올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감독의 개성은 좋은 의미의 “외강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하다는 안 좋은 의미로써의 외강내유가 아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화려하고 흥미롭지만 그 내면은 부드럽고 연민을 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감독은 기존 연출했던 뮤직비디오의 발랄한 이미지를 미국 이민 가족에 덮음으로써 자칫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환경을 환기시킵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감독의 개성이라 할 수 있는 연출의 영역입니다. 소위 “B급 감성” 으로 칭해지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 빠르고 많은 컷 전환, 완급 조절을 위한 여러 영화에 대한 오마주, 그리고 오마주에서 오는 코미디와 분위기 조성 등이 이 영화를 외강내유로 만들어 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리뷰 세 번째 파트에서 자세히 후술 하겠지만 이런 연출적 특징으로 인해 거둔 높은 성취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점은 에에올이 영화라는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교양과 소양의 폭을 확장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둘 째는 영화 내적인 요소들입니다. 에에올은 아메리칸드림을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온 중국 가족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해당 가족의 3개 대(代)인데, 이민 1세대이자 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과 웨이먼드가 있습니다. 그 위아래로 중국에서 평생을 산 에블린의 아버지 공공과 에블린의 딸 조이가 존재하는데 이 3대는 각기 다른 문제와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중간에 끼어있는 에블린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딸을 인정해주지 않는 대립되는 내면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이 인물을 통해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을 역설합니다. 세대,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작중 웨이먼드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친절”이라 제시합니다.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한 승려 법정은 “...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바로 친절이다. 친절은 자비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라며 불교가 가진 연민이 비단 종교적 마음가짐일 뿐 아니라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있음을 어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친절을 핵심 주제로 삼은 에에올에서의 절정은 후반부 악당으로만 존재했던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와 에블린의 관계를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가족과의 갈등은 커지기도 하고 일부 해소되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변화를 거치게 됩니다. 이는 친절을 통해 가족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가족의 유대는 애증(愛憎)이 모두 섞여있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금 징수와 신고가 목적인 디어드리와 에블린의 관계는 건조한 공적 관계라는 점이 주목할 부분입니다. “세상에 피할 수 없는 2가지는 죽음과 세금이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100달러 지폐 속 인물)의 말처럼 에블린에게 있어 디어드리는 가족과는 달리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악연입니다. 하지만 영화 최후반부 에블린은 웨이먼드가 제시한 친절함을 수용함으로써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모든 문제와 갈등의 시발점이었던 세금신고와 기한 문제를 디어드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악연에게도 친절을 보이며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길을 여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이 영화 속 갈등의 가장 큰 주체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민 1세대 에블린과 미국 교육을 받은 신세대인 그의 딸 조이입니다. 그리고 조이는 갈등 상황 속에서 거대한 멀티버스의 빌런이자 흉계를 꾸미고 있는 조부 투파키로 묘사되는데 조부 투파키(조이)의 목적이 자기 파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친절이라는 주제는 두 가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첫째는 가족에게 이유 없는 악의가 사실은 조건 없는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둘째로는 세상과 개인이 상호작용하게 되는 모든 것들(생물, 추상적 개념들 등등)과의 관계에서 연민을 가질 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외적인 요소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영화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신생 미디어입니다. 비교대상이 되는 글, 미술, 음악, 그림 등에서 얻을 수 있는 문화적 교양과 구분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영화와 전통문화는 구분되며 서로 다른 성취를 얻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글이나 음악 미술 등 전통문화에서 얻을 수 있는 깊이의 소양을 찾기 힘들지만 반대로 전통문화는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와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문화 간의 관계가 아주 수평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에에올에서는 영상, 음악, 영화언어에 포함된 모든 요소들을 섞어 기존 매체와 전통문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재미와 문화적 소양을 발견했다는 점이 에에올의 가장 뛰어난 성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시로 에에올에서 에블린의 얼굴을 정면 클로즈 샷으로 잡은 후 짧은 시간 안에 수십 개의 컷이 지나가는 씬을 통해 멀티버스의 다채로움과 거기서 오는 수많은 상황 갈등 환경 등을 연출한 장면이 있습니다. 해당 장면은 빠르고 수많은 컷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미술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고, 짧은 나레이션만 존재하는 데다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글만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또한 이 장면에 함께 사용된 웅장한 사운드 트랙 역시 음악이라는 독립적인 형태로는 그저 기존에 나왔던 클래식이나 오페라 형태의 반복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화라는 형태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에에올이 역은 성립하지 않던 명제인 영화와 전통문화 간의 소양적 관계를 확장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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