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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혁 Mar 17. 2023

영화 "사바하" 리뷰

신화와 사건 사이

"...영화의 종장에서 신화에는 질문을, 사건에는 결말을 제시하며 마무리됩니다..." 


아래의 글을 작성한 지 벌써 4년여가 지났습니다. 당시에 사바하는 제게 한 영화에 두 가지 이야기를 공존시켜 신화적인 공포와 현실적인 미스테리함을 동시에 주었던 영화이자, 지금은 정말 유명해진 배우 박정민을 두 번째로(첫 번째는 동주) 만나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2023년 넷플릭스에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연일 화제인 가운데 사이비 추적을 주제로 한 영화 리뷰를 다듬어 낸 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기도 합니다.

 리뷰를 고쳐쓰는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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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사바하"는 전반부 기괴한 공포영화 같은 긴장감과,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며 사건을 풀이하는 긴박한 후반부로 구성 된 잘 만든 "이야기" 였습니다.


2.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신화적인 이야기와 현실적인 사건을 다루죠. 두 이야기 모두 개연성을 유지하며 풀어나가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2-1. 신화적 이야기 파트는 여러 사람의 관점으로 진행됩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초반에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현실의 합리에서 약간 벗어나 영화에 이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2-2. 현실적 사건은 주인공 박웅재 목사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초반부에 나온 신화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풀어가는 현실적 사건은 그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해주었습니다.


2-3. 또한 두 가지 사건 모두 타래가 풀려 해결되어 가는 과정 속에 그 흐름의 '결' 과는 반대 되는 일이 하나씩 일어납니다.


2-4. 신화의 시발점이었던 김재석이 사실은 병상의 노인이 아닌 제자를 사칭한 중년의 남자였다는 사실은 그 동안 김재석이 정말 살아있었다는 것이 사실일지 아니면 허수아비 김재석을 내세우고 자신의 제자로 위장해 활동했던 사이비 교주 김재석일지 상상의 여지를 남깁니다.


2-5. 사건의 발화점이었던 박나한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치며 괴로워하다 결정적인 순간 가장 신화적인 방식으로 살아남아 사건을 진화합니다. 김재석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에게 총을 맞아 치명상을 입지만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던 김재석과 함께 산화합니다.


2-6. 재미있게도 두 이야기의 마무리 또한 기존의 '결' 과는 전혀 반대로 결말의 문을 열어둡니다. 단순히 가짜 김재석을 내세워 사이비 행세를 한 줄 알았던 중년의 김재석은 티벳 고승의 증언대로 정말 육손이었고, 단순히 돌연변이로 태어나 터부시된 금화의 쌍둥이 언니는 사명을 다하곤 신화와 함께 산화합니다.


3. 영화의 종장에선 신화에는 질문을 사건에는 결말을 제시하며 마무리됩니다.
그 질문은 종교인이라면 불편하면서도, 영화를 집중해서 다 보고 난 후라면 한편으론 "신은 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4. 영화 속 깨알 같은 요소가 많습니다. 감독의 전작 제목을 약간 변주해 말장난으로 쓴다던지, 곡성이 연상되는 장면들,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와 똑 닮은 배우등 알고 있다면 찾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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