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쇼생크 탈출』
※스포일러 없습니다.
처음으로 두 편의 영화를 묶어 다루어보려 합니다. 그 영화는 바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와 세계 영화 평점 1위로 익히 알려져있는 "쇼생크 탈출" 입니다.
두 영화는 접점은 물론이고 이렇다 할 공통점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의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 두 영화가 엮일만한 지점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묶어서 보았을 때 흥미로운 지점이면서 두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영화의 진행에 주동인물(다른 형식의 영화에선 주인공)이 관찰자에 의해 서술되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동주"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윤동주 시인의 전기영화이지만 윤동주 시인의 가장 중요한 정서인 '부끄러움' 을 다루기 위해 사촌이자 동지, 동무였던 독립운동가 몽규를 작중의 주동인물로 설정합니다. 동주가 몽규를 보며 느끼게 되는 열등감은 나라를 빼았기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던 무력감으로 치환되어 윤동주 시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좋은 영화적 장치를 하게됩니다. 때문에 저는 비록 영화 "동주"가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적으로 관람하였을 때 "동주(의 시선으로 본 몽규)"가 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화는 많은 부분 몽규에 의해, 몽규와 함께 가게되는 길을 겪는 동주의 삶을 그리고 있기에 동주는 관찰자로서 영화에 등장하게 되는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인 동주는 영화속에서 능동적으로 존재합니다. 주동인물인 몽규가 동주와 함께 겪게되는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인물이라면 관찰자인 동주는 그 사건에 휘말리면서도 함께 사건과 몽규를 바라보며 겪게되는 내, 외적 갈등에 타당하게 이입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동주를 보고나면 부끄러움을 알게되었기에 부끄러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윤동주 시인과 그런 동주를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동인물과 그를 지켜보는 관찰자를 분리해 주인공으로 삼는 이 형식은 영화 문법적으로 정말 세련되었다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형식을 무려 30여년 전에 활용한 명작 "쇼생크 탈출"이 정말 뛰어난 영화이라 여겨집니다. 쇼생크 탈출도 역시 주동인물과 주인공이 분리된 형태를 보입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되고, 교도소에서 여러 사건사고를 만들어내는 주동인물 앤디 듀프레인은 영화속 모든 사건을 겪고, 주도하고, 만드는 인물이지만 영화는 끝까지 앤디의 내면에 대해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레드의 나레이션을 통해 앤디는 "교도소 안에서도 자유인처럼 거니는 사람", "첫 인상으로 가장 나약해 보였던(가장 먼저 울음을 터트릴것 같은)인물" 정도로 묘사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반면 앤디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묘사하는 레드는 아무런 일도 수행하지 않고 사건도 겪지 않지만 앤디를 지켜보고 어울리며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나레이션을 통해 묘사하죠. 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레드인 이유는 영화의 원제이기도한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제는 "The Shawshank Redemption(쇼생크의 구원)"으로 영화의 끝에서 진정으로 구원받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곱씹어본다면 진주인공이 레드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것입니다.
이 처럼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주동인물과 그를 지켜보는 관찰자를 분리하는 시도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범인(凡人)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기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더없이 현실적이면서도 결국 "변화하여 입체적인 인물이 된다." 는 주인공으로서의 요소를 갖추게 되는것은 관찰자이자 범인(凡人), 그리고 영화를 보게되는 대다수의 관객들 이라는 점이 잔잔한 울림을 주는것과 동시에 영화 내적으로는 영화의 긴장을 "관찰"이라는 기법을 통해 완화해 주어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너무 과하지 않게 조절해주는 기능도 하게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