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회고, 2021년 다짐
얼마 전부터 수염을 기르고 있다.
재택을 시작하며, 피부에 트러블을 막고자 며칠 면도를 안 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털이 많이 나더라.
딱히 이상해 보이지도 않고 해서 그냥 두어 보았다.
조금 있으면 한 달을 채울 것 같다.
사실 본격적으로 기르게 된 계기는 친구들과의 랜선 파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수염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수염을 그냥 두어 보고 있는데 뭐 나쁘지 않다고.
그럼 더 길러 보라고 입을 모아서 말해주었다.
크게 이상할 것 같지 않다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감이 생겨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별 뜻 없이 말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큰 동력을 얻었던 것 같다.
꽤나 덥수룩한 수염을 지니게 된 지금.
수염이 뭐라고, 내 심리에 꽤나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수염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 ‘편견’을 이겨야 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하나 같이 말했다.
면도는 남자들이 아침에 사회적 ‘깔끔함’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수염은 ‘관리하지 않는 남자’라는 선입견을 준다.
귀찮아서 그 짧은 시간 면도도 안 했다는 생각도 심어준다.
아울러, 머리카락에 비해서 불규칙적으로 나는 털의 향연은 지저분한 인상을 주기 딱 좋다.
이목구비의 규칙성에 반하면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나는 관리가 귀찮아서도 아니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안 씻는 것도 아닌데
이러한 편견 어린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의외로 많이 듣는 이야기이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지인에게 개인 메시지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요즘 많이 힘드나, 어떤 ‘사연이 있냐’
없다. 그냥 기르는 거다.
그런데 수염을 기르면 어떤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거대한 불만이 생겨서 수염으로 분출한다던지,
너무도 큰 슬픔이 있어 어떤 정리도 하기 싫어 기른다던지,
나의 수염에 대해서 각종 스토리가 생긴다.
예전에 어떤 인플루언서가 수염을 기르고 절대 누군가 시비를 걸지 않는다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말이 정말 너무나 공감이 된다.
짧은 외출에도 마스크를 쓰고 나서서 딱히 외부인을 마주칠 일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얼굴이 ‘무섭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험악해 보인다고 한다. 밤길에 마주치면 숨을 것 같단다.
살면서 착해 빠져 보인다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무섭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보았다.
“수염이 있으면 ~하다, 고로 무섭다.”라는 문장에 숨은 인과관계가 궁금하다.
요즘 예술에 관심 많냐, 진짜 작가가 되고 싶냐 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예술인이 수염을 기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는 하다.
연예인이 작품을 위해서 기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러 작가들이나 영화감독 등이 수염을 기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들의 속내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하튼 이들을 동경해서 기른 게 아니다.
예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예술하려고 기른 것도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기른 거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이 수많은 편견을 이겨내며 든 생각이 있는데,
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고 말했다.
실존이 나 그 자체라면, 본질은 나라는 인간에 부여된 운명이다.
더 구체적으로 실존이 수염이라는 털 그 자체라면, 본질은 “지저분, 사연, 무서움, 예술”인 것이다.
이 운명적 시선 때문에 그냥 털일 뿐인 나의 수염은 움츠려 드는 순간이 많았다.
한 번씩 비관적인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순간도 많다.
나도 결국 인간이기에 이런 말들을 무시하며 사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다.
억지로 무시하며 4주의 가까운 시간을 보내니 내성이 생겼달까.
웬만한 말을 그냥 적당히 흘리게 되었다.
소심한 나는 의견을 개진해야 할 때면 속으로 먹는 순간이 많았는데,
요즘 들어 그냥 말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모르는 것도 모르겠다며 당당히 말하고, 회사에서 평소엔 하지 않던 개드립도 날린다.
수염에 대해서 언급할 때 그냥 무시하거나, 당당히 ‘그냥 길러요’ 라며 대꾸해서 그런가.
대꾸와 말대답이 조금 더 쉬워졌다.
아마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여러 말들을 많이 듣는 시기이기에 숨어 있던 반골 기질이 잠시 깬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너희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라는 순간적인 각성이랄까.
그럼에도 연말이 다 되어서야 내가 가진 타인에 대한 ‘겁’을
조금이나마 특이한 방식(?)으로 해소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그토록 어려웠던 그냥 ‘막 말하기’가 수염을 기르면서 가능해지다니…!
지금의 이 반골 기질을 기억하고 내년에도 이어서 수염을 길러 보려고 한다.
실존적 ‘나’를 좋아해 주며, 본질적 ‘나’를 조금은 무시해가며 더욱 겁 없는 2021년을 보냈으면 한다.
2021년에 딱히 이루고 싶은 건 없는데, 더 막 말하고는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