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서 문과로 살아남기 8장
*전문적 투자자도, 전문적 기획자도 아닙니다.
*다량의 뇌피셜이 포함되어 있으니 너무 믿지는 말아주세요.
나는 약 5년 정도 주식 투자를 해왔다.
2017년에 처음 주식을 산 이후로 정말 다양한 투자를 도전했었다.
정보 매매, 기술 매매, 가치주, 성장주, 자동 매매 등.
수익이 나던 때도 있었지만 일관된 원칙이 없었기에 이런저런 전략에 옮겨 다니며 거래 비용만을 갉아먹었다.
그러다 이 굴레를 끊겠다며 재작년부터는 다양한 책을 읽으며 명확한 투자 철학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 기간에는 그냥 지수만 추종할 뿐이었다.
긴 노력 끝에 현재는 흔들림 없는 ‘가치 투자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나의 가치관에 맞는 투자철학을 세웠던 과정이
기획자로서 내 발전적 이상향, 기획 철학을 세우는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 남겨 본다.
일단 내가 투자 철학을 수립했던 과정을 매우 간단히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았다.
어스워스 다모다란 교수의 ‘투자철학’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다.
위 표 역시 해당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조금 쉬운 말로 바꾼 것이다.
일단 나는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문 펀드매니저도 쉽지 않은 세계에 왜 자신감을 가지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시장을 이긴 유명 투자 구루(레이달리오, 워런 버핏 등)들의 포트폴리오는
13F를 통해서 이미 세상에 나오고 있고 스타일에 맞춰 이를 복제하면 된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항상 이길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나 다수의 펀드 매니저보다는 우수한 성과일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 후 시간 지평 및 시장을 보는 관점을 골랐다.
나는 중단기 투자에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기존의 여러 투자 전략에 도전하며, 명확한 원칙을 비교적 자주 따라야 하는 중단기 전략은 스트레스가 매우 극심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거래 비용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고 업무에 영향을 주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시장에 대한 관점을 명확히 했다.
개인적으로 미래의 성공을 ‘예측’ 한다는 개념을 믿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이어질 메가트렌드의 주식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타고난 능력이라고 판단했고,
그것이 가격에 반영될 시점을 맞춘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치투자를 선택했다.
예측성이 가장 배제되며, 가격은 언젠간 실적에 수렴한다는 믿음이 가장 강했기 때문이다.
장부와 브랜드 가치를 바탕으로 현재 시점의 가격 비효율성을 찾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고민이 필요했는데
“투자에 ‘데이터’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로 볼 것인가”였다.
현재는 금융 데이터가 수도 없이 쏟아져서 모든 시장 관점이 데이터로 표현이 된다.
단순히 기술적 투자를 데이터로 옮겨온 퀀트 투자도 있고,
기업의 펀더멘털을 바라보는 지표를 필터링하여 투자하는 퀀터 멘털 투자도 있다.
최근 한국에서 많은 각광을 받는 퀀트지만, 나는 퀀트를 선택하지 않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1. 더 좋은 컴퓨터를 쓰는, 훌륭한 시스템 트레이더를 이길 수 없다.
2. 과거 데이터 상으로 옳은 논리는 수없이 만들 수 있다.
이미 많은 금융사에서 수많은 권트 전략을 시험할 텐데,
그들과 경쟁하여 알파를 얻을 수 있는 전략 개발은 어려울 것 같았다.
아울러, 과거 데이터 상에서 옳은 전략, 돈을 벌 수 있는 전략은 수없이 만들 수 있었다.
각종 백테스트 툴이나 커뮤니티 등에는 이미 과거에 수익을 낸 퀀트 전략이 있는데,
이들을 실제로 실행해보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이미 모두가 알아 알파가 사라졌거나,
과거에 좋은 데이터만 취할 수 있는 필터를 많이 넣었기에 다른 시점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리하야 기업의 스토리 텔링 & 장부 가치를 바탕으로 ‘가치 투자’를 하는 현재의 투자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장부 가치로만 기업을 평가하지 않고,
주식 가격과 가치의 괴리가 타당한 ‘스토리’에 따른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때 ‘스토리’가 의사 결정에 미치는 비중이 더 높다.
데이터가 판단을 좌우한다면 퀀트와 다름없기도 하고,
누구든 복제할 수 있기에 알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자 얘기를 꽤 많이 한 거 같은데 요약하면,
장기간의 기다림을 중요하게 여기며
미래 예측을 배제하고
데이터와 함께 ‘이야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 철학이다.
본격적으로 이러한 투자철학과 기획에 대한 나의 철학이 어떤 접점이 있는지 말해보겠다.
이 역시 비슷하게 도식화해보면 아래와 같다.
사실 다소 끼워 맞췄다.
지금 철학은 그냥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는데, 도식화는 나중에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작해 보자면
나는 일단 1인분 보다는 더 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다.
1인분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내려오는 오더(프로젝트)를 정상적으로 마치는 것” 정도가 업무적인 1인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정도로만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해서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나는 추가 기술을 활용하여 능동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혹은 많은 기획자 중에 나라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생겼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렇다면, 추가 기술이 필요할 터인데 기획자의 추가 기술은 뭐가 될 수 있을까.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디자이너의 능력 혹은 개발자의 능력이었다.
명확한 기술을 가지지 않은 중간자의 입장이 기획자인데,
이에 더해 명확한 기술을 가지면 업무에 알파를 가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면을 직접 그린다던지, 로그에서 직접 에러를 찾는다던지 말이다.
그중 나는 개발을 좀 더 공부하고 싶었다.
더불어 단 시간에 얻을 수 있는 스킬보다는 장시간에 걸친 스킬을 더하고 싶었다.
예술적 창의성이 없다고 생각했기도 하고,
생각 구조가 상당히 닫혀 있어 명확한 가이드 안에서만 생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이러한 닫힌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개발 영역 중에서도 데이터 분석에 대해서 공부하겠다고 결정했다.
문과형 직무의 추가 기술에 있어서 대세이기도 하고,
기획 업무에 가장 활용의 폭이 넓다고 생각이 들었다.
프론트엔드, 백엔드는 아무리 공부해도 어차피 회사에서 나에게 그 중요한 일을 시키진 않을 것이기에 데이터 분석으로 결정한 것도 있다.
어떤 걸 공부해야겠다!라는 결정이 되고 나니 되게 혼란스러웠던 지점이 있었다
그럼 내가 이 스킬을 바탕으로 기획자가 되겠다는 건가.
아니면 데이터 분석가가 되겠다는 건가.
내가 원하는 데이터를 뽑아서 분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면 그냥 분석가 아닌가.
이건 추가 공부가 아니라 전직 아닌가.
추가 기술이 원 직무를 잡아먹는 상상을 했다.
데이터의 개입을 무조건적으로 허용하는 기획자라면, 분석가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기본적 업무 정의를 축소하여 데이터에 너무나 큰 가치 비중을 두었다
기획자가 어디까지나 ‘추가 기술’의 영역의 범위에서 개발이나 디자인 기술을 익히려면,
본연의 기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스토리텔링’과 ‘소프트 스킬’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데이터를 조합하여 설득의 논리를 구성하고,
각 상대에 맞춘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전달한다.
다른 직무에 비해 말을 많이 하고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우리가 필수로 지녀야 할 능력이다.
가치 투자의 최종 의사 결정 기준이 타당한 ‘이야기’였듯
기획 업무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술을 배워도 그쪽에 가치 비중을 높이기 시작하면,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우리에게 편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계속 데이터를 공부하더라도 단순히 지표가 높아서 결정을 하지 않고,
큰 스토리 속에서 데이터가 보조하여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획 업무에 대한 내 개인적 철학이다.
“A가 높아서요” 가 아니라 “사용자가 이러한 생각을 가졌을 것 같은데, ‘마침 A도 높아서요.’”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는 것.
데이터 사이언스로 정량적 사고가 갈수록 고도화되고 발전하는 시기에 어찌 보면 개똥철학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 투자와 업무에 있어 스토리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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