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서 문과로 살아남기 10장
고된 학창시절의 여파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문제’라는 단어는 답과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어떤 문제든 그것을 마주한다면, 딱 맞는 답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더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은 문제를 ‘푼다.’는 것이다.
답이 없을 수 있고, 풀이만 지속될 수 있다.
계속해서 풀기만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오지선다 중에서 하나를 골라 딱 맞추지 않아도 의미가 있다.
우리는 시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상관없이 그저 풀기만 해도 된다.
이 사고의 전환이 중요하다 느낀 것은,
인생에서 풀고 싶은 문제가 있냐는 물음이 나의 존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대단히 가벼울 수도 또 엄청나게 거대할 수도 있으며,
삶을 다 바친다고 한들 정답의 언저리까지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님들의 소위 동기부여 영상을 보면,
그들이 풀고 있는 문제는 실로 거대하다.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겠다, 의료 시스템으로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
이후 다시 나를 보게 되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가 문제가 작아서도 아니고 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회사에 다니면서 문제를 ‘풀기는’ 한다.
회사의 문제이거나, 상사의 문제이거나, 동료의 문제를 푼다.
문제는 보통 task 단위로 떨어지게 된다.
가령 우리 회사는 앞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SaaS를 만들 건데요.
“이거를 쪼개 보자면, 이런 부문으로 크게 다섯가지가 나뉘고 (…)
~님은 이 중에서 OO 기능 개선 역할을 맡아 주시면 되어요.”
초기에는 회사의 비전과 미션에 공감하여 그 문제 풀이에 동참했던 것은 같은데,
어느새 뒤돌아보니 남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혹은 누군가가 풀고 있는 문제의 펜이 되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든다면, 크게 두가지 방향의 ‘문제 찾기’ 방법이 있다.
1. 내가 풀고 있는 문제를 내 것으로 만들거나,
2. 다른 문제를 찾는 것이다.
대부분이 취하게 될 방식은 1번이다.
이때도 여러 가지 전략을 취할 수가 있는데,
내가 풀고 있는 문제의 사이즈를 키워서 원래 생각했던 미션의 사이즈와 같게 하거나,
현재의 사이즈 문제이더라도 기초적인 미션에 일치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중요한 단어가 등장한다. 미션이다.
지금 작아 보이는 문제가 종래에 큰 문제 의식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미션, 거창한 말인데 결국 단체로 풀고 있는 큰 문제다.
매번 자신에게 떨어지는 문제를 내 것처럼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적어도 큰 문제에 공감이 되어야 동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이런 양가 감정이 많이 든다.
나는 큰 문제에 공감을 하여 지금 나의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인가.
아님 나에게 부여된 지금 이 문제 그 자체 풀이를 즐기려고 노력하는 것인가.
부여된 문제가 아니라면 아직 풀고 싶은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동기를 잃어갈 때면 이런 문제 의식에 직면하게 되는 것 같다.
혹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다.
지금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부여된 문제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음 속에 있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돈이 없게 될 수도 있다.
이 감정이 들게 되면 결국 진심의 문제를 묻고 월급의 문제를 내 것으로 영위한다.
분명한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문제 = 내 문제” 라는 공식을 따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은 멈춰서 회사의 큰 문제를 당당히 물어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이에 충분한 공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방식이 창업이 되었던 혹은 이직이 되었던 이를 맞출 수 있는 거처를 찾아야 한다.
일의 동기는 단순 기술일수도, 돈일수도, 사람일수도 없다.
건강한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같은 문제 의식으로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