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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하는대로 Nov 21. 2023

엉터리 완벽주의자

"지금이 4시 38분이니까... 5시부터 해야지"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진짜 다이어트 시작이야"

"아직 잘 모르니까 공부를 좀 더 하고 알아봐야지"

"내년 1월부터 무조건 한다!"


 깔끔하게, 어디에도 흠잡을 곳 없이, 뭐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하는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중간에 일을 망치면 처음부터 다시, 실수는 없던 일로 만들고 아름다운 스타트를 위해서 판을 갈아엎는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어마무시한 스트레스를 받고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99를 잘해도 1을 못하면 전부 망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아주 오래전이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에도 인지하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기 전, 시계를 보니 정각이 되기 8분 전이다. 당장 시작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굳이 '정각에 시작해야지'라고 마음을 먹는다. 8분 동안 무슨 일이 생겨서 정각에 시작을 못하게 되면 시곗바늘이 그다음 정각을 가리킬 때까지 기다린다. 그뿐인가? 좋아하는 과목은 미친 듯이 공부해서 100점, 혹은 그와 가까운 점수를 받아오는 반면 자신 없는 과목은 손도 안대기 일쑤였다. 잘하지 않을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평균은 늘 중간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평균은 누가 봐도 완벽하지 않은데 이걸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나?)


 완벽하고 싶은 마음은 죄가 아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누구나 완벽하게 끝내고 싶어 하고 마무리를 잘하고 싶어 한다.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은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너무나도 당연한 마음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완벽주의자의 단점은 완벽하지 않을 거면 시작조차 안 하는 것이다. 시작도 안 해봤는데 이미 그 결과가 완벽하지 못할 거라는 어림짐작으로 내게 온 수많은 기회들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시작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고 아름답게 끝내는가? 그것도 아니다. '엉터리 완벽주의자'라는 모순적인 단어가 떠오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고 모든 일들이 내가 소망하는 대로 완벽히, 그렇게 예쁘게 이뤄지지 않는다. 내 통제 하에 있어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면 처음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나는 신이 아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없다. 이 글은 완벽주의자 성향을 내려놓고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쓰는 글이다. 글을 쓰는 것도 완벽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미뤘기 때문이다. 미루고 고민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한 달 넘게 브런치에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내가 택한 방법은 '일단 쓰는 것'이다. 잘 쓰는 거 말고, 그냥 쓰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진부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새해에는 완벽하지 못해도 원하는 건 시도해 보는 내가 되길 바란다. 새해 다짐은 12월 말이나 1월 초에 하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조차 완벽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애매한 11월에 이렇게 다짐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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