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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Apr 19. 2024

예정된 죽음

오월에 태어난 언니가 오월에 죽었다.

- 단편소설 '돌고래' 첫 문장, 소설집 '해방의 계절' 수록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날을 향해 달려갑니다. 모든 생명의 시작이 있듯이 모든 생명에는 끝 또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죽음과 끝을 부정합니다. 당연한 이치인데, 아니길 바라며 간절하게 바라고 바랍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울 것이며, 겪고 싶지 않은 무한의 영역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부정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오늘도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단편소설 '돌고래'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무려 첫 문장입니다. 오월에 태어난 언니가 오월에 죽었다. 우리는 무에서 태어나 유를 이루고 다시 무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간다고들 합니다. 오월에 태어난 언니 역시 오월에 죽은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죽음은 아주 자연스러우며 언젠가는 꼭 겪을 경험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늦게 이루고 싶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끝을 두려워합니다.


비워내기와 내려놓음. 비워야지 새로 채워지며, 내려놓아야지 새로운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손에 쥐어진 것을 떠나보낼 것은 두려워합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내 손을 떠남으로써 사라질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안개처럼, 먼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귀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사라졌다 생각하겠지만, 그 울림은 영원히 이 지구를 떠다닙니다. 우리 귀에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지만, 입에 나온 공기의 진동은 여전히 떠다니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 역시 그럴 것입니다. 사라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닐 겁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에는 힘이 있습니다. 힘이 있다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정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신,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도록 뭐라도 하는 게 어찌 보면 더 나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죽었을 나를 위해, 죽은 나를 기억해 줄 누군가를 위해.

기억에 남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오늘입니다.


신세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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