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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obabkim Jun 23. 2022

누군가와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사실 싸움의 이유를 잘 알고 있다.

A와 B가 힘차게 싸우고 난 뒤 나에게 찾아와서 서로 자신의 말을 변론한다.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충 이런 식이다. 


A:  "야 진짜 B 너무하지 않냐.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물론 내가 그때 그런 식으로 말한 건 좀 과하긴 했지만 아무튼 A는 아주 선 많이 넘었어."


B:  "아니 어떻게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어? 물론 내가 좀 심하게 말하긴 했지만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한 A는 정말 너무해."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도도 아닐뿐더러 인간 내면의 깊은 생각을 통찰하는 소양을 가진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얼마 전 주변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의 내용을 들어보고 나니 두 사람이 왜 다퉜는지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진위여부나 사실에 근거한 정보, 아울러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품고 있는 문화나 사회 양식과는 전혀 무관한 소위 '발작 버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발작 버튼은 '역린'이나 '콤플렉스'가 신조어화 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함부로 건드리거나 논란거리가 될 만한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쉽게 말해 누르면 발작한다고 해서 "발작 버튼"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발작 버튼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진위여부사실에 근거한 것아니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품고 있는 문화적 맥락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가령 내 삶을 예로 들자면 만약 누군가가 약속 장소에 30분 정도 늦는다 하면 내 경우 그러려니 하고 이후에 약속에 늦은 사람을 크게 나무라지 않는다. 반면 나의 친한 친구는 약속에 늦는 사람을 사람 관계를 소홀히 하는 나쁜 사람으로 규정해버리곤 한다. 내가 성격이 유하고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런 일에 발작 버튼이 눌리지 않는 선천적 기질 or 후천적으로 학습된 결과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도 뜬금없이 발끈하는 포인트가 확실히 존재한다. 특별한 예를 들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사람들이 '왜 저래?' 라는 질문이 나올 만큼 뜬금없는 상황에 발작 버튼이 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대화 중 누군가 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자기주장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면 이 문장이 스쳐 지나갔는지 먼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 "그건 내가 조금 실수하긴 했는데."

   누군가와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본질적인 이유를 외면한 채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스치듯 지나간 그 한마디, 내 눈에는 사소해 보이는 그 작은 실수가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인 '발작 버튼'일 확률이 높다.


"네가 조금 과하다고 쉽게 말하는 그 포인트에서 그 친구는 화가 난 거야."

"네가 좀 심하게 말한 게 그 친구한테는 너무 심한 말이었던 거야."


"인정하기 싫으면 계속 싸우던지 ㅋㅋ"


나는 그렇게 A와 B의 또 다른 발작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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