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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ug 20. 2024

여름날 방망이질하는 시원함이라니

걸레가 호강하네

"청소기 돌렸으면 물걸레로 대강 닦아라. 그렇게 쓸고 닦는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 그러다 골병들면 서러운 건 결국 너 자신 뿐이야."

에어컨을 켠 채 방문을 열고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쪼그리고 앉아 마루를 닦고 있는 나를 보며 한마디 하신다. 자신은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에어컨을 벗 삼고 있는데, 며느리가 더위에 맞서 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네. 그렇잖아도 설렁설렁 닦고 있는 중이에요."

"저녁에 와서 하든가 아님 쉬는 날 몰아서 하면 될 것을 출근할 사람이 뭐 하러 아침부터 땀을 흘리고 그래."


어머니 말씀이 맞다. 여름날 아침의 청소는 에어컨을 틀고 시작한다 해도 봐주는 법이 없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이마며 얼굴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그걸 알면서도 버릇처럼 아침 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집어 쓱쓱 바닥을 문지른다. 그래야 하루가 제대로 시작될 것만 같다. 빛이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밝혀주는 고마움에 부응하는 것처럼. 거기다 머피의 법칙처럼 청소를 하지 않으면 누군가 꼭 방문할 것 같은 강박증도 한몫을 한다. 그러니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아침마다 청소를 할 수밖에 없다.


마루를 다 닦고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덮쳤다. 찜질방에라도 들어선 것인가 여름의 위세가 무섭다. 순식간에 몸이 달구어졌다. 툇마루며 평상, 벤치를 후다닥 닦았다. 마루를 닦을 때는 깨끗했던 걸레가 먼지를 먹었다. 봄날의 황사와 꽃가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먼지지만 제법 더럽다. 그렇게 더러워진 걸레를 들고 재빨리 빨래터로 향했다. 빨래터는 대문 옆 담 밑에 자리해 있다.


남편이 정원의 돌덩이를 뽑아 만들어 준 빨래터

올봄, 남편은 장독들을 모아둔 장소에 빨래터를 만들었다. 이 장소는 대문에 가까이 있어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쉽게 눈에 띈다. 그런 곳에 장독을 놓아두면 운치가 있을 것 같아 장독들을 모아 두었는데 장독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장식을 목적으로 내용물을 담지 않았으니 손길이 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장독의 주인은 나뭇잎과 먼지가 되어버렸다. 보기 좋으라고 놓아둔 장독들이 흉물로 변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 장독들을 원래의 자리에 옮기고, 자리엔 빨래터를 만들었다. 장독들은 옛 친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좋았고, 우리는 빨래터가 생겨 좋았다. 고맙게도 후로는 빨래터에 먼지 대신 나무 그늘이 찾아들었다. 어느 때고 빨래하기 좋은 곳이 된 것이다.


대야에 물을 가득 채우고 손을 씻었다. 양팔에도 물을 끼얹었다. 더위가 사그라들었다. 세차게 물을 튼 후 걸레를 흔들어 빨았다. 대야 속으로 먼지가 번진다. 대야에서 조물조물 빤 걸레를 빨래판 위에 올려놓고 사정없이 내리쳤다. 먼지가 쏙쏙 빠지도록 힘차게 방망이질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깨끗해진 걸레를 물속에서 헹구는데 갑자기 웃음이 났다.

'어쩜, 이토록 정성을 들여 빤 빨래가 고작 걸레인 거야. 이 정도의 정성이라면 좋은 옷을 빨 때나 속옷을 빨 때여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그런 옷은 세탁기에 맡기고 걸레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빤다고.'

물론 속옷이나 수건도 가끔씩은 삶아 방망이질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걸레를 빨 때처럼 매번 그렇게 정성을 들이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비싼 노동력의 최고 수혜자는 걸레인 것 같다.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척척 닦아내는 대견함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그런 이유에서라면 정성을 들여 빨 만도 하다.


지금도 아침에 청소를 하면 땀이 흐른다. 그럼에도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은 습관이기도 하겠거니와 더운 여름 나무들의 푸르름을 보며 방망이질하는 시원함을 맛보기 위함도 있으리라 본다.

빨래터에 앉아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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