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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Aug 29. 2021

같은 회사, 다른 직업이 시작됐다.

프로덕트 오너가 되어보실래요?

프로덕트 오너가 되어보실래요?"


어느 날 대표님이 말했다. 외부 미팅을 마친 후 카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중이었다. 잠시 멈칫하던 그분은 이내 이렇게 말했다. "단예님, 프로덕트 오너 해보시는 거 어떠세요?"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새해 시작과 함께 사무실에 놓인 책 한 권을 발견했다. 'Product Owner'. 쿠팡 PO 분이 쓴 그 책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 이것 좀 빌릴게요! 책 주인에게 말하고 휴일 내내 읽고 또 읽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은 브랜드, 마케팅으로만 가득했다. 책을 읽고 처음으로 프로덕트로써 우리 서비스를 바라보게 되었다.



단단히 꽂혔다. 이 책 정말 좋아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고 다녔다. 고객에게 집착해야 하고 데이터 분석은 이렇게 해야 하는데 반성하는 등 마치 교과서처럼 다뤘다. 마케팅 얘기는 하나도 없지만 마케팅의 시작은 좋은 상품의 탄생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좋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사실 마케터는 상품 탄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직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정말 마케팅을 하고 싶은 건가라는 직업적 매너리즘도 갖고 있었기에 왠지 모를 공허함은 더 크게 다가왔다.  


반면 분명한 공허와 함께 가슴 속 두근거림도 커지고 있었다. 책에 꽂힌 건 상품을 만드는 과정,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뿐만이 아니었다. 프로덕트 오너라는 직업. 그 직업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기획자이면서 전략가이고 경영자이면서 팀원인, 난생 처음 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그 결합의 중점인 PO는 새로운 꿈이 되고 있었다. 



오래전 그라운드, 그 라인 밖을 바쁘게 돌아다닐 내 모습에 두근거려서 펜을 잡기 어려웠던 젊은 날처럼.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온 두근거림이었다. 다짐했다. 몇 년 동안 마케터로 잘 성장한 다음에 틈틈이 공부해서 프로덕트 오너가 되자라고.


그렇게 다짐한지 2개월이 지났을 쯤일까. 그렇게 되어 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다. 물론 단단히 꽂힌 나는 대표님께도 한번 지나가듯 말했다. 몇 년 뒤에는 PO도 해보고 싶다고. 



"나는 사주는 안 믿는데 나는 뭐 이렇대. 저렇대."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재밌게 보는 편이다. 연말에 한 유명 어플로 나의 새해를 점쳐봤다. 올해 운은 그다지 좋지는 않은데 3월에 윗사람의 신임을 얻어서 새로운 자리로 이동한다라고 나왔다. 작은 회사에서 새로운 자리가 어디에 있지? 설마 이직하나? 이런 생각도 해봤다. 에이, 역시 어플은 정확하지 않아!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재밌게도 PO를 하지 않겠냐고 묻는 그 순간에 내 3월을 점친 그 사주가 떠올랐다. 역시 믿을만해. 살짝 놀랐지만 덤덤한 척 "네, 아직 준비할 것은 많지만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글을 썼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나는 이 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대표님께 이제 그것이 되어보자는 말을 들었다. 기꺼이 꿈을 꿔보려고 한다.'


마케터 3년차에, 프로덕트 오너가 되었다. 그렇게 같은 회사에서 다른 직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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