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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Jul 07. 2022

사랑받을 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미리 알고 있는 거라고 하기로

이렇게 사랑받을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 시간이 조금 덜 외로웠을 것 같아요.

황선우 작가의 책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에서 본 문구다. 독립영화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은 영화를 작업하는 동안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개봉 후 10만 명이 넘는, 독립영화에서는 성공이라 할만한 기록을 이루고 나서 위처럼 말했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사람들이 이렇게 사랑해 줄 거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 힘든 시간이 조금은 덜 외로웠을 거라는 말.


형광펜을 꺼내 밑줄을 그으며 내 시간도 미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글쓰기도 멈추고 외출도 너무나 귀찮은 요즘, 우울감과 함께 살고 있다. 벌써 반년을 지나 두세 달 정도 지나면 곧 1년이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이 힘들다면, 살아온 날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힘들다 느껴진다면. 나이 들수록 이보다 더 힘든 일도 생길 수 있다고 말이다. 아픔을 잊기 위해 더 강한 채찍으로 대하듯 지금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겸허히, 차분히 이겨내도록 노력하며 시간을 보내자고 말이다.


그럼에도 곧 다가올, 아님 조금 먼 후에 다가올 사랑받는 모습, 고통보다는 행복과 함께 사는 내 모습을 내가 미리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 초에는 번아웃이 와서 난생처음 심리 상담도 받아보고 병원에도 가봤다. 초기 증세로 금방 이겨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아주 평범하게 또 큰 어려움 없이 자라온 내 인생에 가장 큰 충격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그만한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이 들어도 기억에 남을 경험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야윌 정도로 살이 빠져, 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고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 평화를 안겼다. 그 안에서 난 열심히 또 열정적으로 중재하고 아껴주고 내 진심이 위로와 감동이 되도록 눈물 나게 예쁜 말들을 고르고 골라 전했다. 언제 터질지 몰라도 지금은 평화와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는 몇 달간 회사와 집에만 갇혀 있는 환경이 되었다.



부러운 사람들이 늘었다. 질투 나는 일도 늘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아픔은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면 그랬다. 나는 회사와 집만을 반복하는데 저들은 그렇구나. 신나게 사는 모습, 예쁘게 연애하는 모습, 탄탄대로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나는 작아졌다. 


멘탈 관리와 정신 승리를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타입이라 그런 마음이 들면  이런저런 얘기를 되새기고 누군가에게 나누면 조금 나아졌다. 물론  반복이다. ', 질투나! , 부러워. 아니야.. 누구나 인생새옹지마인걸.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른 이야기가 있는걸. , 그래도 부럽네!'


한 영상을 봤다. 연인에게 환승 이별을 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 여자는 이별의 아픔에 허덕이며.. 살 뻔! 했지만, 건강하게 이겨냈다. 


이유는 '사랑받을 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 갔다. 갑자기 시공간이 바뀌듯 휘리릭 하더니 레스토랑에는 그 여자뿐이었다. 그러다 합석을 해도 되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당황해하며 알겠다고 하니, 한 할아버지가 앉았다.


난생처음 본 할아버지는 그 여자의 이름을 다정히 불렀다. 헉, 뭐지? 했는데. 자신은 미래의 연인이고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사라졌고 다시 그 카페에 가보니 다시 한번 세계관이 바뀌듯 할아버지와 그 여자뿐이었고 오므라이스를 먹게 됐다. 그 할아버지는 오므라이스에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 특이한 식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다정하게 알려줬다. 그 남자에게는 과거지만 그 여자에게는 미래일지 모르는 함께해서 행복한 날들을 하나씩. 어느 날, 다시 레스토랑으로 가니 편지만 남기고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미래에는 단 한 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의기소침해 있던 당신을 격려해 주고 싶어 찾아가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아무리 사는 것이 슬프고 힘들어도, 당신은 반드시 행복해진다. 너는 사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자상한 할머니가 될 거라고. 가족들은 당신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당신 덕분에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부터 주인공은 더 건강하게 살아간다. 일도 잘하고 자기 인생도 즐기며 산다. 언젠가 본인이 원하는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고 합석해도 되냐는 웨이터의 물음에 괜찮다 하니 젊은 남자가 앉는다. 그 남자는 오므라이스를 시켰고 마요네즈를 뿌렸다. 그 모습을 그 여자는 흐뭇하게 바라보며 드라마는 끝이 난다. 



그래서 그렇게 살기로 했다. 난 미리 안다고 말이다. 눈 앞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아도, 누군가가 지금 날 보며 괜찮아 미래에는 다 잘 될 거야 말해주지 않아도. 사랑받는 모습을 알지 못해도. 혹여나 아픔이 길어져도, 좋은 시간이 매우 늦게 찾아와도.


사랑받을 줄 미리 알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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