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쌤의 이야기
모든 일이 기분 좋음에서부터 시작할 수 없음을.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름 돋게 음악을 하는 모든 친구들이 겪는 이야기다.
피아노 레슨을 하러 갈 때,
그날의 컨디션이 최악이거나 연습이 아주 아주 아주 부족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모든 일분일초를 고민에 빠져 허덕인다.
"레슨 미룰까"
그렇지만 하늘 같은 레슨선생님에게 일방적으로 레슨을 취소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도 레슨이 취소되면 약간 좋아하셨던 것 같은 :) )
학생의 입장에서는 준비 안된 학생을 받는 일은 교수님에게 꽤나 힘든 시간이 될 거라는 것을 알지만, 감히 내가! 스케줄을 조정한다는 것은 안될 일이었다.
그럴 때에는
"그래, 준비 못한 내 잘못이니까, 가서 실컷 혼나고, 받아들이고! 다음에 다시 잘 준비해서 가자"
라는 마음으로 레슨실에 들어간다.
이 날은 최고의 레슨 시간이다.
이 날 나는 아주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교수님의 말을 경청하고, 최대한 집중하고 수업을 따라간다. 반포기 상태이기 때문에 몸도 아주 릴랙스가 잘 되어 있다. 덕분에 교수님께서 주는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실, 교수님도 알고 있을것이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어떤 걸음을 했을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으로 레슨을 마치고 나온다. 당장에 연습실로 뛰어가 지금 배운 것들을 다시 느끼고 싶은 희열과 쾌감에 쌓인다.
반대로-
나의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 되는 날이 있다.
스스로 너무 뿌듯하게 최고의 연습시간을 보낸 날이 있다.
와- 나 천재 아니야?
교수님한테 칭찬받을 준비하고 들어간 레슨시간은
최악이다.
1시간 내내 혼쭐이 난다. 정신 못 차리게 후두려 맞고 나온다.
무언가를 배울 때에는 낮고 겸손한 자세가 많은 것들을 흡수하게 해 준다.
내가 무언가를 잔뜩 만들어 갔을 경우에는 그저 내 것들을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사실 연습량이 많다고 제대로 된 연습을 했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거기에 잔뜩 몸에 힘이 들어가 기량도 제대로 뽐낼 수가 없다.
나 스스로 나에게 심은 자존심은 나의 몸을 더욱 굳게 만든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레슨시간에 그만큼의 기량이 나오지 않으면 심지어 더욱 허덕이게 되기도 한다.
결과는 항상 예측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연습을 안 하게는 낫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연습을 한 시간은 후에 충분한 보상으로 돌아온다.
다만, 어떤 상황이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내가 스스로 자신이 없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면 안 되다는 것.
성장하는, 발전하는 시간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내가 준비한 것처럼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내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고, 피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큰 준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