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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영 Jun 12. 2024

내 손가락이 내 손가락이 아닌

어른 학생들의 음악시간


아이들의 손가락 상태


달팽이 더듬이

천천히 악보를 읽어나가는 학생들 중에 건반에 손을 올려 두고 다음 건반을 짚어야 할 때,

손가락을 건반에서 띄어내지 못한 채 다음 움직여야 할 손가락을 먹이를 찾듯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

꼭 느린 달팽이의 더듬이 같다고 얘기한다.


건반 위의 무중력

조심스러운 친구들 중 건반에 채 내려 않지 못한 채, 허공에 머무르며 두루뭉술 떠다니는 모습은 꼭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손가락 같다.


무중력 말고 “달착륙 “도 있다.

바닥을 살짝 딛기는 하지만 어느새 포옹- 하고 떠오르는, 어정쩡하게 손을 건반을 딛고 띄어내는 친구들에게 하는 얘기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X

칭찬은 잘 가던 학생을 멈추게 한다.

칭찬을 하면 잘하는 것이 아니더라.

잘하고 있는 학생에게 치는 중간에

“너무 잘하고 있어! 좋은데?”

등의 칭찬을 하는 순간 아이들은 마비가 되거나 의식을 하게 되어

바로 틀려버린다………

내가 칭찬을 참아야지…  일단 참고 다 친 후에

칭찬해야 하는 과제가 항상 있다.


자아가 강한 손가락

나는 가끔 손가락의 소리들이 들린다.

아우성, 마구잡이로 건반을 때리는 학생의 손가락에선 아우성이 들린다.

피아노의 소리가 시끌시끌한 게 아니라 학생의 손가락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절규, 억지로 손을 아슬아슬하게 당겨 치는 친구들의 손가락에선 나에게 외쳐대는 절규가 들린다.

겨우 잡아끌어 건반에 안착시키는 모습에서 포착된다.

리더십, 학생이 손가락에 이끌려가는 모습도 있다.

학생의 눈과 정신 보다 손가락이 먼저 이끌어 가는 모습의 손가락은 매우 강인하다.


손가락이 취하다.

비틀비틀 댄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손가락이 정말 꼭 취한 사람 마냥 움직인다.


손가락이 음치인 것 같다.

손가락은 음을 누를 뿐 노래를 하지 않지만,

가끔 음치인게 아닌가 싶은 순간이 있다.

이건 정말 말로 표현이 안된다.

그렇지만 이 말을 했을 때 학생도 인정했다!


방해하지마 손가락

옆에서 알려주려고 하면 “쉿”소리가 들리는 손가락이 있다. 난 참견쟁이와 방해꾼이 되어버렸다.

혼자 가겠다고 하는 독립심 강한 손가락이다.

흥! 너 맘대로 해!


깜짝 놀랄 줄도 아는 손가락

혼자 놀랜다. 정말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화들짝 놀랜다. 덕분에 나도 놀랜다.


이미 늦은 손가락.

눈에 뻔히 보인다. 분명 지금 틀릴걸 알아서 난 미리 외친다.

레! 레!

그렇지만 나의 예지력과 순발력은 학생에게 통하지 않는다.

개발자인 한 학생이 속시원히 얘기해 주고 납득했다.

“머릿속에서 이미 손가락으로 출력값이 떨어졌기 때문에 값을 받아들일 수 없다. “

아…..


지옥코스

수업 중 책에 있는 giocoso를 말한 적이 있다.

음악 용어로 “익살스럽게, 즐겁게”

라는 뜻인데..

이를 지옥코스로 들은 친구가 있다. :)

그렇게 수업이 힘들었니….? ㅜㅡㅜ


암튼 어른 학생들의 수업은 재밌다.

옆에서 항상 내가 더 웃어서

애들이 놀리려고 수업하냐고 하기도 하는데,

그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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