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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Nov 23. 2019

'89년생 김지훈'과 영화관에 가기까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1)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되고나서 우린 자주 다퉜다. '82년생 김지영'은 죽어도 보기 싫다는 남자친구와, 그런 그에게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낀 나. 이 영화가 대체 무엇이기에 죽고 못 사는 우리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영화 따위가 뭐라고.


나는 3년 전에 원작 소설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우리 집 '68년생 김지영'을 비롯, 남성중심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뭇여성들을 떠올리며 가슴 치곤 했다.

반면 그는 각종 매스컴을 통해 '82년생 김지영'을 간접적으로 접해왔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세상 힘든 일들을 다 모은 가상현실이야. 여자만 힘든 게 아니라 남자도 똑같이 힘든 시대라고. 어느 한 쪽만 힘들다고 말하는 건 불편하고 싫어."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남자친구가 말로만 듣던 가부장적인 남자인가? 책도 안 읽어보고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무슨 기대였을까.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함께 보러 가자고 제안하면서 나는 그가 곧바로 "YES"라고 답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NO"라는 대답에 적잖이 당황했다. 종일 평행선만 달리다가 피곤해진 우리는, 어느 순간 적당히 타협했다. 그리고 이 언쟁을 멈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와 적당한 합의점을 찾았다고 생각한 나는 다시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를 꺼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 생각했고, 이 정도 지났으면 그도 생각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다시 한 번 제안했다.

"'82년생 김지영' 같이 보러 가자!"


그러나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었다. 잠시 덮어둔 것이었을 뿐.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또 다시 "NO"였다.

"왜 자꾸 있지도 않은 소설 속 김지영 얘기로 날 괴롭히는 거야? 싫다고 했잖아. 난 92년생 내 여자친구가 궁금한 거지 82년생 김지영이 궁금한 게 아니라고!"

그는 평화로운 일상에 다시 불편한 주제를 들이민 내가 원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리곤 물었다.

"정말 그냥 영화 한 편 보러 가자는 게 다야?"



그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찜찜했다. 하. 영화 따위가 뭐라고. 뭐가 그렇게 불편해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거야? 그냥 한 번 같이 보러가주면 안 되나?



그날 우리는 그동안 투닥거린 날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크게 싸웠다. 싸우는 도중 홧김에 전화를 끊어버리고나서야 깨달았다. 솔직한 내 마음은, 그냥 영화 한 편 보러가자는 게 아니었음을.





나는 내 남자친구를 사랑한다. 그도 나를 참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새 서로 조금씩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을 만큼 우린 깊은 사이가 됐다.

그래서일까? 나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는 그 사람이 여성들의 아픔에 공감해주길 은연중에 바랐던 것 같다. 당신의 여자친구가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숱한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나를 '92년생 김지영'으로 만들지 말아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부디 귀기울여주길.

죽어도 싫다는 그와 함께 죽어도 같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그거였다.



솔직해지자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당신은 내 사람이니까. 내 사람 앞에선 솔직해지자. 그리고 용기내어 말했다.


'68년생 김지영'을 평생 보고 자란 탓에,

그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 될까 두렵다고.


우리 집 '68년생 김지영'은 그런 삶도 괜찮다 행복하다지만,

는 그녀가 아니라고.


'82년생 김지영'보다 10년이나 뒤에 태어났지만,

나도 그녀가 겪은 것의 반 이상은 겪으며 살아왔다고.


그게 바로 당신이 궁금해했던 '92년생'인 네 여자친구의 이야기라고.


솔직함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그는 내 말을 잠자코 듣더니 "알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을 '89년생 김지훈'이라 일컫는 그와 함께.



ㅡ(2)편에서 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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