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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Jul 20. 2024

방학

시간이 필요해

학교에 내리치던 햇살

어느덧 방학이다. 브런치에 오래 글을 쓰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럴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브런치가 부담스러워 블로그에는 글을 꾸준히 써보고 있지만, 브런치에는 좀더 정돈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어쩐지 시작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주제별로 발행도 해보고 싶은데 학교에서 종일 일하고 오면 머리가 그런 방향으로 좀처럼 전환되지가 않는다. 매일 주어지는 업무와 육아도 겨우 해내는 상황이었달까.


방학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얼마간의 시간. 그런데 또 금방 지나가버릴 것을 안다. 이번 방학은 평소보다 더 잘 보내보고 싶다. 그러니까, 좀더 촘촘하고 충실하게 기록하고 싶다. 매일 머리를 맴도는 생각들, 방문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 읽은 책에 대한 기록들 같은 것. 지나가버리면 망각 속에 아스라이 사라져버려 흔적조차 잘 남지 않게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들에 대하여. 좀더 써야겠다.


그리고 그림을 배우고 싶다. 마땅한 드로잉클래스를 찾아봤지만 잘 찾지 못했다. 집에서 홍대가 가까워 미술학원도 많을 것 같기는 하지만 순수예술보다는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에 대해 배워보고 싶다. 이전에 사다 둔 아이패드 드로잉에 관한 책을 오래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며칠 전 먼지를 탈탈 털어가며 꺼내보았다. 아이패드 드로잉이라도 시작해보아야겠다.


예전에 그려두었던 색연필 그림. 아이가 그림 그릴 때 옆에서 같이 그리고 오리며 함께 놀았다. 색연필 드로잉북을 보며 따라 그린 그림. 이런 것에 순수한 재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것에 그런 순전한 열망을 느끼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무얼 해도 이전처럼 설레고 새록새록 기대되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지가 오래되었다. 심지어 해외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달랐다. 이미 본 풍경, 어차피 사람 사는 공간, 이런 식으로 기대도 설렘도 자꾸만 그 게이지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최근에 만난 대학 동기는 (무척 흥이 많은 친구였고,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갔었던 뉴질랜드 여행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본 것이라고(그 생생한 진짜로 '무서운' 표정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해 나도 웃으며 보았지).


그래, 우리에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 짜릿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잔잔하지만 분명하게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들. 나로 예를 들자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기록하는 이런 순간들. 이런 순간이 내게 소중하고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래 미루게 되는 건, 돌이켜보면 이런 순간을 만들어낼 만한 절대적인 시간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일로 채워진 하루하루에 잠깐씩 주어지는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고, 짤막한 기록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나들이하고, 집안일로 시간의 틈새를 채우다 보면 가만히, 고요히 앉아 무언가를 성찰하며 글을 쓸 만한 여유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시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혹은 나에게. 그러나 이런 말이 현실에선 사치스럽게 들릴 수 있음을 안다. 그래도 자꾸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 그저 뒹굴거릴 시간,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오래 몰두할 수 있는 시간.


저녁이 있는 삶. 유럽이나 호주처럼 저녁 대여섯 시가 되면 상점이 문을 닫고 고요해지는 도시. 서울의 화려함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더 많은 여유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출산율이 0.5밖에 안 되는 팍팍한 도시. 이제 좀 다른 길을 가야 하지 않나.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고, 요리를 하며, 맛있는 음식을 오래 즐길 수 있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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